13살 때 태국의 난민캠프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7년째 한국생활을 하고 있는 근영(20)이는 아직 ‘꿈’이 없다. 한 전문대학의 호텔외식조리학과에 재학 중이고 그중에서도 제과제빵에 관심이 있지만, 그건 꿈이 아니라고 했다. 난민캠프에 있을 때는 영어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에 살게 된 이후로는 ‘자신감이 없어져서’ 교사를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학교에서 한국어로 된 영어 교과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부터 잘해야 했다. 아빠와 오빠들, 그리고 주변 카렌족 어른들은 모두 공장에 다닌다. 그는 대학을 졸업해도 일을 못 구할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한국이 좋지만,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지는 않아요. 캠프에서 생활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근영이는 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카렌’ 청년이다. 2015년 카렌족 일부가 ‘대한민국 제1호 재정착 난민’으로 입국해 화제가 됐었다.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가족 단위가 목적 국가에 스스로 입국하여 난민 신청을 하는 것과 달리, ‘재정착난민’은 해외 난민캠프에 있는 한국행 희망자들을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천과 정부의 현지 심사를 거쳐 최종 정착지에 수용하는 제도다. 현재 미국·캐나다 등 28개국이 재정착 난민을 수용하고 있고, 한국은 2013년 시행된 난민법에 근거 규정이 마련됐다. 당시 법무부는 처음으로 유엔난민기구의 추천을 받아 태국의 미얀마 접경 지역에 있는 메라·움피엠 난민캠프로부터 카렌족들을 데려왔고, 2023년 현재까지 총 9회에 걸쳐 미얀마 재정착 난민 248명을 데려왔다. 이들은 경기도 김포시와 시흥시, 인천 부평구 등 수도권 일대에 자리 잡았다.
한국 입국 미얀마 재정착 난민 248명
카렌족이 한국에 자리 잡은 지 8년. 기자가 부평에서 만난 카렌족 청년들은 여전히 미얀마와 한국을 ‘심적으로’ 오가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근영이는 집에서 여전히 카렌어를 쓴다. 부모님이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입국 초기 5~6개월 정도 법무부에서 제공하는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생활관에서 한국 사회 적응 교육과 함께 한국어 교육을 받았다. 이후 자발적으로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이나 기타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각종 한국어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일을 하느라 한국어 공부를 포기했다. 문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한 아빠와 오빠들은 한국어를 잘 몰라 직장에서 의사소통을 힘들어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카렌족 가영(23)이도 “부모님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밖에 하지 못한다”며 가족끼리는 카렌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카렌족 재정착 난민을 연구하고, 이들을 포함한 이민자를 돕고 있는 송인선 사단법인 경기글로벌센터 대표에 따르면 카렌족 성인의 40% 이상이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이것이 청소년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송 대표는 “재정착 난민 1~3기 성인 모두는 입국 초기 한국어 교육에 성실히 임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어 학습에 한계를 느끼고 상당수는 포기한 상태”라며 “그렇다 보니 장소만 한국으로 바뀌었을 뿐 생활문화도 난민촌 시절로 돌아가게 되고,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는 자녀를 케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미얀마 카렌족 재정착 난민 대부분은 교육급여신청 대상자이지만 제때 신청하고 교육급여 혜택을 받은 가족은 2022년 기준 단 한 가족도 없다. 일을 하면서도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게 프로그램 시간대와 이수 기준을 조정하는 등 부모를 위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언어 장벽 때문에 섞이지 못하는 카렌족들
근영이가 이중생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도 ‘한국어’였다. 한국어가 어려워 카렌족끼리 만나고, 카렌족끼리 만나다 보면 한국어 실력이 퇴화되는 악순환이다. 근영이는 부모님과 달리 중·고등학교에서도 한국어로 교육을 받았고 지금도 대학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듣지만, 여전히 발표를 하고 과제를 하려면 주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한국어가 잘 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을 포함한 미얀마인과의 교류가 한국인과의 교류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근영이는 대학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한국인 친구와 매주 한 번씩 만나 삼겹살, 김치찌개 등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문화를 배운다. 근영이는 이 멘토링 활동이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 멘토링 활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인 친구를 만나는 일이 거의 없다.
지난 7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민청과 이민정책의 방향에 대해 “결국 언어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어 교육과 한국어를 잘하는 이민신청자에 대한 인센티브 등 한국어를 가장 중시해야 한다”며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이 그들끼리 모여 있고 그들의 문화를 유지한다면 결국 통합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 장관이 언급한 대로 카렌족의 부적응 역시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위치한 ‘미얀마 거리’에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재정착 난민 카렌족 등을 비롯한 미얀마인들은 휴일에 이곳의 교회, 미얀마사원 등에 머물며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있다. 부평지역 택시기사 A씨는 “부천, 안산, 남동공단, 김포 등 전국 각지에서 일하던 미얀마인이 추석 등 연휴나 주말마다 이곳에 모여 서로 만난다”고 했다. 미얀마거리에서 22년간 여인숙을 운영한 B씨는 “주말 손님의 평균 4~5팀은 미얀마 사람이다. 이곳에서 돈을 고향으로 보내고 여가생활을 한다. 주말에는 마치 내가 이방인인 듯 느껴진다”고 말했다. 앞서의 근영이와 가영이의 가족도 이곳에서 미얀마 예배 등 주말마다 카렌족 간 교류를 한다고 했다.
공장, 건설업… 이들 앞에 정해진 미래
‘언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로에도 한계가 생긴다. 23살 카렌 청년 가영이는 16살 때 부모님, 언니, 오빠, 남동생과 함께 한국에 왔다. 그런 가영이도 근영이처럼 ‘꿈’이 없어졌다. 한국 고등학교 졸업 후 3년간 시험을 준비하는 등 간호사를 꿈꿔왔지만, 한국어의 벽에 부딪혀 포기했다. 지금은 스테이크를 파는 배달음식점에서 포장 알바를 하며 영주권 취득을 목표로 일주일에 8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나서도 간호사에 다시 도전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저는 대학교도 못 가잖아요. 대학교 생활도 해보고 싶은데 지금은 그냥….” 가영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끝을 흐렸다. 가영이는 고등학교 때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요즘은 친구들이 대학생활로 바빠 1년째 만나지 못했다. 가영이는 한국 생활의 힘든 점에 대해 “말을 진짜 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올 때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위기청소년을 돕는 비영리단체 ‘사람을세우는사람들’ 김재열 대표 또한 이들의 진로가 다양하지 못한 것을 문제로 꼽았다. “한국어를 못하다 보니 사회적응을 할 수가 없다. 성인임에도 학습 수준은 고등학생, 중학생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카렌족 청소년을 만나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꿈이 뭐냐’는 질문에 ‘학교 럭비부 주장이 되고 싶다’는 대답을 들을 때였다. 언어가 안되다 보니 몸을 쓰는 일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미래도 10년 후가 아닌 3년 후밖에 생각을 못한다.”
송인선 대표는 현 이민정책의 문제로 진로교육이 전무하다는 점을 꼽았다. “일본에서는 이민자에게 언어교육 이외에도 직업교육을 6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시킨다. 이 6개월 동안에는 취업 전까지 생활비도 보장해준다. 그런데 한국의 이민정책에는 직업교육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기껏해야 공장 한두 군데 견학시키는 게 전부다. 아이들 각각의 특기를 발굴할 기회가 없다.” 실제로 기자가 미얀마 거리에서 만난 미얀마인 20여명의 직업은 모두 제조업, 건설업, 요식업, 농장일 등 네 가지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외국인 차별 여전, 사회적 지지도 없어
난민과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차별적 시선도 여전히 이들의 적응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가영이는 햄버거집 알바를 하다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한국인 남성들에게 미얀마에서 왔다는 이유로 호칭을 지키지 않는 등 놀림과 무시를 당했다고 토로했다. 가영이는 한국어를 할 줄 알았지만 그들 앞에서는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척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알바 들어가자마자 바로 메뉴를 외우라고 했는데 제가 어려워서 못외웠어요. 일주일 후에 매니저님이 그런 저를 보고 화가 나서 욕을 했어요. 그래도 매니저님한테는 감사했어요. 왜냐하면 더 열심히 하라고 욕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영이는 이후 ‘그런 사람을 또 만날까봐 무서워서’ 한동안 알바를 하지 못하다가, 교회 지인의 권유로 겨우 현재의 알바 자리를 찾았다. 앞서의 근영이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겨도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난민을 받아줘야 한다’고 대답한 한국인은 55%로, 조사국 29개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조사국 평균 74%)
전문가들은 재정착 난민 청소년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으로 ‘거점공간’을 꼽았다. 김재열 대표는 “전국의 ‘청소년 문화의집’처럼, 지원체계를 한 번에 제공할 수 있는 센터들이 필요하다. 언제든지 이곳에 오면 어떤 도움이든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천에만 7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거점공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송인선 대표는 “경기글로벌센터는 진로코칭, 기초 한국어 교육, 방과후학교, 심리정서 지원, 문화체험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센터 같은 곳이 많아져야 하고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딸 2명을 출산한 카렌족 여성 초클리(33)씨와 미얀마 마트를 운영하는 C씨 등 기자가 만난 이들은 한국 적응에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으로 ‘교회 등 종교단체나 민간단체의 쌀, 라면 등 물품 지원과 치과 치료 등 종합적인 지원을 받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판 ‘조승희 사건’ 막아야 한다
한국의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은 54만명이 넘는다.(2020년 기준·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그중 난민아동청소년은 409명이다.(2021년 기준·난민인권네트워크) 기자가 만난 카렌족 청소년 중에는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한다”는 이도, “미얀마를 여전히 고향으로 생각한다”는 이도 있었지만 모두 한국을 좋은 나라로 여기고 있었다. 이들의 입에서는 ‘무빙’ ‘힘쎈여자 강남순’ 등 최신 한국 드라마 이름이 술술 나왔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한국을 사랑하는 이들이 최소한 한국 사회에 부적응하여 범법자로 성장하지 않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렌족 청소년 중 사춘기를 차별 속에 지내면서 우울증, 자살충동 등 심리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아요. 조승희 군도 미국에서는 이주배경 청소년이었죠. 제2의 조승희 사건(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으려면 이들을 잘 품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