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문구점. 가게 안 2~3명의 손님은 모두 초등학생이 아닌 20~30대 성인이었다. 색 바랜 종이접기 세트, 캐릭터 도시락 등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13년째 문구점을 운영해온 박모(53)씨는 “요즘은 학교와 유치원에서 필요한 준비물을 사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옛 추억을 느끼고 싶어하는 성인들이 주로 찾는다”며 “영업 초기보다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학생들의 수업 준비물을 팔던 학교 앞 문구점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만620개였던 문구소매점 수는 올해 8000여 개로 줄었다. 매년 500개 안팎의 문구점이 폐업한다고 한다. 그나마 문구점을 찾는 이들은 학생이 아닌 옛 문구류를 찾는 성인이나, 외국인 관광객 등이다.
문구점이 쇠퇴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1년부터다. 교육부는 그해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습준비물 지원 제도’를 시행했다. 학교장이 조달청 등을 통해 최저가 업체에서 준비물을 대량 구매하도록 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학생 부담은 덜었지만 영세 문구소매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는 문구류도 문구점 대신 온라인 쇼핑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사무·문구류 거래액은 2017년 7329억원에서 2022년 1조5742억원으로 5년 사이 두배 넘게 늘었다.
일부 문구점들은 무인화를 선택하고 있다. 이재민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차장은 “인건비를 줄이고 리모델링으로 새로운 고객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무인문구점으로 새로 시작하는 조합원들도 많다”며 “최근 3년 사이 조합에 가입한 133개 업체 중 20%가 무인문구점 영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문구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바꿨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필기구와 노트를 사러 오는 초등학생과 부모들로 북적였지만, 최근에는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문구점을 30년째 운영해온 오세인(69)씨는 “요즘은 준비물을 사러 오는 학생보다 태국, 중국, 대만 관광객들이 많고, 주로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이나 담요 등을 사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