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중소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제작한 여러 게임 영상에 일관되게 등장한 캐릭터의 손동작이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 남성에 대한 혐오 표현인 ‘집게손’ 모양이 맥락없이 숨겨져 있다는 의혹이 온라인에서 제기된 것이다. 게임 주요 이용자층인 20·30대 남성들이 분노하면서 게임사들엔 비상이 걸렸다. 주말밤 해당 게임들의 책임급 인사들이 줄줄이 인터넷에 등장해 사과하거나, 해당 스튜디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각사는 대대적인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26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영상에 ‘남성혐오 손동작’으로 의심되는 장면이 등장했다. 남성 혐오 손동작은 검지와 엄지를 사용해 길이를 표현하는 듯한 제스처인데, 과거 한국 남성 혐오주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네티즌들이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한 부분은 제작사 측이 최근 만든 넥슨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 영상의 한 장면이었다. 영상 속 캐릭터가 남혐 손동작과 비슷한 포즈를 취했다는 게 네티즌들의 주장이었다.
이후 제작사 소속된 한 애니메이터가 과거 엑스(트위터)에 올린 게시글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지금은 비공개된 작년도 엑스 게시글에서 “은근슬쩍 스리슬쩍 페미해줄께”라는 글이었다. 네티즌들은 이 애니메이터가 “페미니즘으로 보이는 게시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면서 “회사 작업물에도 의도적으로 개인 사상을 숨겨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메이플스토리 영상 외에도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블루아카이브,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 등에서 캐릭터의 손모양이 의심되는 장면을 모아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일부 장면에 대해서는 “집게손 모양을 표현하려고 총도 안 잡고 공중에 뜬 상태로 그려놨다”고 했다.
게임 업계는 이 사안을 심각하게 인식,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서 비공개 처리하는 동시에 책임자급 인사가 직접 영상을 올리며 대응에 나섰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이날 직접 사과방송을 하면서 “관련된 모든 자료를 내리고,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마케팅도 중단되었으며, 협업한 작가의 영상도 모두 내릴 예정”이라며 “외부 업체와 협업한 다른 영상도 검토 중에 있다. 이와 함께 인게임, 마케팅 등 모든 활동과 용사님들의 의견을 꼼꼼히 살펴보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특히 “저희(메이플)가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것을 드러냄에 있어서 일련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문화, 그런 것들을 몰래 드러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말했다.
던전앤파이터 이원만 총괄 디렉터는 “일부 애니메이션 리소스에서 부적절한 표현이 확인돼 전반적인 원인 파악을 진행하고 있다”며 “문제가 된 범위가 넓을 수 있기 때문에 빠짐없이 검토하겠다”고 했다.
블루 아카이브의 김용하 총괄 PD는 “영상 홍보물 중,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포함된 점을 확인했다”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영상들에 대해서는 진위 확인과 빠른 조치를 위한 비공개 처리가 완료됐다”고 했다. 에픽세븐의 김윤하 PD도 “홍보 영상의 일부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조사 중”이라면서 “관련 리소스 조사 및 비공개 조치를 진행 중이며, 면밀한 검토가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제작사도 입장문을 내고 사과하면서도 의도성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스튜디오 뿌리는 이날 오후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믿고 일을 맡겨주신 업체들, 이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분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스태프의 발언도 모두 확인했다. 게임의 방향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런 발언들로 해당 영상이 연관되게 한 점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이어 “(손동작은)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아니다. 해당 스태프는 키 프레임을 작업하는 원화 애니메이터로서 모든 작업에 참여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다만 이유를 막론하고 불쾌감을 느끼게 해드린 것에 잘못을 통감한다. 해당 스태프는 수정 작업 등 모든 작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