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한 지 이틀째인 지난 2월 2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대기실 출입문이 폐쇄돼 있다.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암 환자를 데리고 일본에 나갔다 와야 할 판입니다. 아내가 그동안 더 나빠질까봐 걱정이에요.”

지난 2월 20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에서 만난 A씨(40대)는 아내의 암 수술을 위해 미국 LA에서 왔다. A씨의 아내는 한 달 전 암 2.5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기 위해 입국했지만, 의료 공백으로 항암치료조차 요원해졌다. 이들 부부는 교포기 때문에 한국 입국 후 체류기간이 90일에 불과하다. “수술에 앞서 2주에 한 번씩 최소 4번 항암 치료를 해야 하는데, 파업 때문에 치료 스케줄이 밀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이들에게 남은 체류 기간은 60여일뿐.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면 인근 국가에 다녀와야 하기에, 그동안 남은 항암치료와 암 수술을 모두 받지 못한다면 A씨는 암 환자인 아내를 데리고 다시 ‘일본이라도 하루 찍고 와야’ 한다.

A씨가 앉아 있던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외래약물치료실의 접수 창구에는 ‘대기시간 침대병실 7시간, 의자병실 4시간’이라는 안내문이 나붙어 있었다. 이날은 ‘빅5병원’인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일제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를 중단한 첫날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일 22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 소속 전공의의 약 71.2% 수준인 8816명의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 가운데 근무지 이탈자는 소속 전공의의 약 63.1%인 7813명이다.

이날 오후 세브란스 비뇨기암센터 접수 창구 앞에서 만난 B씨(60대) 또한 지친 기색을 보였다. “오늘 우리 아저씨 방광암 수술일자를 정하려고 왔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대. 부산에서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지금까지 굶었어. 오늘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이리 안 오네. 몇 시에 마치는지를 모르니 돌아가는 열차도 못 끊지…” 실제로 세브란스는 전공의 612명 중 600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거 이탈해 수술 일정을 50% 정도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미 이번 주에 예정됐던 수술 중 긴급하지 않은 환자를 추려 입원과 수술 연기를 안내했고, 외래 진료도 축소했다. 환자들에게도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때 진료를 재예약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응급실 뺑뺑이가 입원 뺑뺑이로

‘응급실 뺑뺑이’는 더 나아가 ‘입원 뺑뺑이’로 확장된 모양새였다. “죽지 않을 정도로 응급 조치만 받고 있는 거지.” 같은날 저녁,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만난 김수현(52)씨는 폐암이 재발한 아버지를 모시고 6일 만에 이곳 응급실로 돌아왔다. 6일 전 그는 폐암, 혈관 질환, 창자 질환 등 많은 합병증을 앓는 아버지에게 저산소증이 와 급히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병실은 있으나 담당할 의사가 없어 입원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응급실에서 ‘퇴원거부’를 해가며 최대 기간인 5일간 치료를 받다가 중형병원으로 전원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수술을 한 환자라 중형병원에서 케어가 어려워 증상이 악화됐다. 결국 하루 만에 퇴원수속을 밟고 서울대병원 응급실의 음압실로 돌아왔다.

“6일 전에는 그냥 응급실이었지만 지금은 숨을 잘 못 쉬게 되셔서 음압실로 들어갔어요. 처음에 제대로 치료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 저희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잘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중소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경우도 많거든요. 어떤 암 환자는 복수에 물이 차서 왔는데 많이 차지 않았다고 그냥 돌려보내더라고요. 복수가 많이 찼으면 쉽게 뽑을 수 있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서 전문의가 아니면 쉽게 못 뽑는대요. 그러니까 해줄 게 없다고, 환자가 몰려드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숨을 못 쉬어서 컥컥대고 있는데… 그걸 못 빼주더라고요.”

김씨는 “6일 전에는 오자마자 접수가 됐었는데 오늘은 파업 때문인지 훨씬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검사시간도 더 길더라”라며 “조금 안정화되면 또 옮기라고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긴 기다림 끝에 교수를 만나더라도 짧은 상담 후에 응급실로 떠밀려 온 경우도 있었다. 일반 검사실 등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응급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애초에 응급실에 접수하지 않았더라도 응급실 추가 비용은 환자의 몫이 된다. “교수랑은 달랑 3분 면담했어. 응급실 가서 조치하라 그래서 내려왔더니 8시간째 기다리고 검사하고 이러고 있는 거야.” 인천에서 간암 3기의 동생을 입원시키기 위해 예약방문한 이모(60)씨는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보호자 대기실에서 6시간 넘게 입원 가능 여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식사는 하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밥이 넘어가겠나. 한끼도 못 먹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2월 2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접수 대기 창구 앞이 보호자와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전원하라는데 갈 곳이 없다”

“여기서는 입원이 안 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라는데 지금 전원할 곳이 없대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자기네들 욕심으로 환자들 죽이는 거 아니에요? 시간 때우고 죽으란 얘기죠. 의사들이 면허 취소를 당할지 안 당할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고 죽는 사람만 불쌍한 거죠.”

전공의들이 전체 의사의 무려 46% (740명)를 차지해 비교적 숫자가 많은 서울대병원의 경우 일부 진료과에서 이번달뿐 아니라 다음달 초의 수술까지도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은 진료과별로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진료가 불가해 일정 변경이 필요하다’는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입원을 원하는 병원 밖 환자들도 많지만, 이미 입원해 있는 환자들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코드블루. 20층. 혈액계중환자실.” 서울성모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C씨(20대)는 의사 파업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혈액계 중환자실에서 코드블루가 발생했다는 안내방송을 연속해서 4번이나 들었다고 전했다. 코드블루는 심정지 환자 발생을 알리는 응급 코드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행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C씨는 평소 같으면 1~2번 반복되었다가 상황이 마무리되었겠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코드블루 안내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당시 의사 파업으로 인해 혈액계 중환자실에는 전공의들 중 인턴이 모두 빠진 상태였고, 따라서 평소에 비해 역할을 할 인력이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CPR상황에서 인턴은 폐에 직접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호흡기를 짜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그 방송을 듣고 다들 ‘코드블루를 쳐봤자 뭐하나. 의사가 없는데’ 그랬죠. 파업이 실제로 환자들의 생명에 영향을 끼치겠구나 하는 걸 그때 느꼈어요.”

서울성모병원은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지난 2월 19일부터 전공의 이탈이 가장 빨리, 많이 발생한 병원 중 하나다. 전공의 대규모 집단사직 이틀 차인 지난 2월 22일 오전, 수술을 30%가량 축소한 서울성모병원은 대기공간뿐만 아니라 로비의 소파마다 환자와 보호자가 널브러져 만석이었다. 이들은 쪽잠을 청하다가, 다시 일어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시청하곤 했다. 접수창구에 이따금씩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빨리 좀 해달라고요” “힘들다고요” 소리를 지르는 등 소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주간조선이 지난 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간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3곳에서 인터뷰한 환자 및 보호자 13명의 평균 대기시간은 약 6시간이었다. 그러나 대기가 끝날 때까지 기자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길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드레싱은 간호사가? 병원마다 대책 달라

전공의가 떠난 이후 남은 의료진에게는 다양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더욱 많은 일과 책임이 떠넘겨지거나, 반대로 강제로 연차를 써서 쉬어야 하는 의료진도 있었다. 빅5 병원 중 한 곳의 정형외과에서 일하는 간호사 B씨(20대)는 집단사직 첫날 출근 4시간 전에 병원으로부터 ‘오늘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동기도 쉬기 싫은데 강제로 쉬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연차를 써서 쉬어야 하니 서로 쉬기 싫다고 경쟁 중이에요. 정형외과는 수술 위주라 수술이 많이 취소되니 환자가 없어요. 그러니 간호사도 필요가 없다는 거죠.”

정부는 전공의 이탈에 비대면 진료 및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PA의 불안정한 지위로 의료 행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간호사들이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간호사 커뮤니티, 단체 카톡방 등에서는 ‘일반간호사를 교육 없이 바로 PA 근무 투입시켰다더라’ ‘A대형병원 내시경실 간호사가 갑자기 수술실로 배치됐다더라’ 등 혼란스러운 상황도 공유되고 있다. 한편 빅5 병원 중 한 곳의 간호사 C씨(20대)는 “S병원 전공의들 카톡에서 PA가 처방을 못 내도록 오더 파일을 지우고 전공의 아이디 비밀번호를 바꾸자고 얘기가 나온다더라”고도 했다.

불법의 영역인 데다가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보니 병원마다 전공의 진료 공백을 채우는 정도도 다르다. 한 병원에서는 본래 의사가 해야 하는 ‘단순 드레싱’ 정도는 간호사들이 도와주자는 공지가, 또 다른 S대학병원에서는 ‘간호사는 단순 드레싱, 심전도 등 어떠한 의사 업무도 시행하지 않으며 문제가 되면 개인이 책임지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이 같은 차이에 따라 환자들의 피해 정도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비상진료대책을 세우며 의료공백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전국 12개 군병원 응급실을 개방하고,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현장 복귀를 촉구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주요 수련병원 100곳 중 50곳에 직원을 파견해 현장을 점검하고,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서는 ‘면허 정지’ 등 행정 처분을 내린다고 밝혔다. 또한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고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주동자와 배후 세력에 대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정상 진료나 진료 복귀를 방해하는 행위도 엄중히 처벌하기로 했다.

의사단체들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2월 20일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향후 집단행동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은 요구 사항들을 제시한 만큼 전공의들의 사직 및 병원 이탈은 계속될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국민의 생명권은 당연히 소중하나 의사의 직업 선택 자유 역시 국민의 기본권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전공의 집단행동을 두둔했다.

결국 강대강 대결의 피해는 고스란히 의료 소비자의 몫이 될 전망이다. 2월 21일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사례는 92건이었다. 일방적인 진료예약 취소, 무기한 수술 연기, 진료 거절, 입원 지연, 수술 취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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