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5층에 마련된 팝업스토어. 한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찍힌 여성의 움직임은 옆에 있는 자판기 모양의 긴 분홍색 부스에 동시에 나타났다. 여성의 옆으로는 만화 캐릭터 같은 홀로그램이 걸어 들어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여성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캐릭터는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PLAVE)’의 멤버로, 사진을 찍은 후에는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플레이브는 작년 3월 데뷔한 5인조 가상 아이돌 그룹인데, 지난 10일에는 한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비비의 ‘밤양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데뷔 1주년을 기념하는 팝업스토어가 지난 1일부터 17일까지 더현대 서울에서 열렸다. 이곳에서는 아크릴 스탠드 등 굿즈를 판매했고, 멤버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프로토 홀로그램’ 부스가 마련돼 팬들이 몰렸다.

지난 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에서 열린 가상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 데뷔 1주년 기념 팝업스토어에 마련된 홀로그램 포토부스에 플레이브 멤버 '노아'의 홀로그램이 등장해 있다. 팝업스토어에 모인 팬들은 분홍색 부스에 등장하는 가상 아이돌 홀로그램과 함께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김보경 기자

좋아하는 가상 아이돌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팬들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백화점 영업 시간 전부터 줄을 서 현장 대기를 등록해야 했다. 순서를 기다린 후 앨범을 구매하고 촬영 부스 이용 티켓을 얻으면 현장 대기 시스템에 또다시 이름을 올려야 했다. 충남 천안에서 온 염모(19)씨는 “오전 5시에 일어나 오전 7시 40분쯤 더현대 서울에 도착했는데 대기 번호 189번을 받았다”면서 “그 후 3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앨범을 사고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했다. 염씨는 이 백화점에 도착한 지 5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1시 30분이 돼서야 홀로그램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이런 ‘무한 대기’ 후 가상 아이돌과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20초에 불과했지만, 팬들은 이마저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백화점 도착 후 5시간이 지났는데도 현장 대기 중이던 손모(28)씨는 “대기가 힘들었지만 사랑으로 이겨냈다”며 “좋아하는 아이돌과 추억을 남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김모(23)씨는 사진을 함께 찍을 멤버 ‘노아’의 별명인 ‘공주’에 맞춰 왕관과 망토 소품도 챙겼다. 김씨는 “홀로그램 속 멤버가 포즈 취하는 시간에 맞춰 찍는 게 어려워 내내 신경이 쓰였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가상 아이돌 '플레이브'와 사진을 찍은 결과물. 20초 가량 등장하는 가상 아이돌 홀로그램의 움직임에 맞춰 팬들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팬들은 5~6시간 가량 대기하기도 했다. /독자 제공

가상 아이돌 멤버가 다녀갔다는 흔적도 팝업스토어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벽이나 전시된 소품 곳곳에는 친필 사인과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적혀 있었다. 팬들은 벽을 따라 걸으며 이를 감상하기도 했다. 벽에 새겨진 메모들은 플레이브 멤버들이 팝업스토어를 들렀다는 취지로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이곳을 찾은 한 관람객은 “‘지금 팬들이 있는 공간에 멤버들도 머물렀었다’는 느낌을 극대화하려고 특별히 준비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가상아이돌 '플레이브'의 데뷔 1주년 팝업스토어 바깥쪽 벽면에 적힌 가상아이돌 멤버의 친필 메모. 왼손을 본따 그림을 그려 놓기도 했고, 팝업스토어 곳곳에 작은 글씨로 팬들을 향해 전하는 메시지를 적어두기도 했다. /김보경 기자

가상 아이돌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만든 팝업스토어를 보고 행인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백화점 이용객들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인가?”라고 말하며 팝업스토어 안을 기웃거리거나 “AI 아이돌이잖아!”라며 반갑게 알아보기도 했다. 가상 아이돌의 존재와 그 인기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행인도 있었다. 가상 아이돌의 친필 사인을 본 이모(23)씨는 “납득이 잘 안 된다”며 “화면 뒤에서 ‘진짜 사람’이 가상 아이돌처럼 연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혼란스럽다”고 했다.

가상 아이돌이 흥미롭다는 이들도 있었다. 설모(29)씨는 “최근 플레이브가 비비의 ‘밤양갱’을 누르고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가상 아이돌이 팬도 이렇게 많고 팝업스토어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고 했다. 이모(30)씨는 “홀로그램 사진부스는 가상 아이돌뿐 아니라 다른 아이돌도 시도해보면 좋을 기발한 아이디어”라며 “팝업스토어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예약제라고 하니 아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