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부산·울산·경남 지역 대리운전기사 모임인 ‘카부기 공제회’ 회원들이 부산 사상구 이동노동자지원센터에 모여 주먹을 맞대고 있다./김동환 기자

경남 양산시에 사는 대리운전기사 김천석(54·가명)씨는 작년 초 일하다 발을 삐끗했는데 자리에 주저앉은 채 일어날 수가 없었다.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평소에도 허리가 아파 진통제를 먹는 일이 잦았는데 증상이 악화됐다. 그때부터 한 달 반을 쉬어야 했다. 그는 아들과 둘이 살며 하루 7시간 정도씩 일해 월 150만~200만원을 번다. 벌이가 끊기자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됐다.

프리랜서 대리기사는 금융기관 대출도 쉽지 않다. 카드 현금 서비스는 곧장 고금리 빚이 되니 무작정 쓰기도 어렵다. 당시 정부가 운영하던 ‘긴급생계비대출’도 금리가 연 15.9%나 됐다.

막막한 그를 도운 것은 같은 일을 하는 대리기사들이 모여 만든 ‘카부기 공제회’였다. 연 3% 금리로 150만원 급전을 구해 시름을 덜었다. 2022년 생긴 카부기는 ‘카드라이브 부울경 대리기사’를 줄인 말이다. 회원 400명 정도가 내는 월 1만원 회비로 2000만원 안팎 규모의 작은 기금을 유지해, 김씨 같은 회원들에게 소액 대출이나 병원비 지원 등을 한다.

지난달 19일부산·울산·경남 지역 대리운전기사 모임인 '카부기 공제회' 회원들이 부산 사상구 이동노동자지원센터에 모여 어깨동무한 채 웃고 있다. /김동환 기자

프리랜서 대리기사는 노동시장 바깥에서 기업이나 노조 등의 울타리 하나 없다. 최저임금 안팎을 벌며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병을 얻거나 작은 사고로도 위태로운 빈곤에 빠진다. 하지만 카부기 공제회를 통해 서로의 은행이자 보험이 되어준다. 자발적인 상호부조(相互扶助)이자 자체적인 사회안전망인 셈이다.

김씨는 원래 중소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한 직장인이었다. 휴일 없이 오랜 기간 과로하다보니 건강이 나빠져 퇴사했는데, 이후 아내와도 갈라서고 고등학생 아들과 둘이 산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40대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리운전이었다고 한다.

김철곤 공제회 공동대표는 “사업 실패, 가족의 투병 등 이곳 대리기사 중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신용불량자도 많다”며 “사채에 손을 벌리는 이도 있어 ‘서로 도와보자’는 생각이 모여 공제회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회원들은 ‘동료’가 생겼다는 걸 장점이라고 했다. 홀로 일했지만 내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이미영(59)씨는 사업 실패 후 46살에 우연히 시작한 대리운전을 14년째 하고 있다. 여성인 그를 특히 더 힘들게 한 건 무례한 일부 고객들이었다. 폭언을 일삼고, 성적 발언과 신체 접촉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럴 때 힘이 됐던 게 공제회 동료들이었다. 겪은 일을 털어놓기도 하고, 야유회를 떠나기도 한다. 가끔 다 같이 봉사활동도 한다.

카부기 공제회는 지역 기금인 ‘부산형사회연대기금’, 공제 연합인 ‘사단법인 풀빵’과 협력해 지원을 더 두껍게 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 풀빵은 전태일 열사가 돈을 털어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마음을 잇는다는 뜻을 이름에 담은 단체다. 김철곤 공동대표는 “부산형사회연대기금과 협약으로 긴급 대출도 하게 됐다”며 “회비 6000원을 더 내면 풀빵을 통해 150만원의 소액 대출, 법률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정한국 산업부 차장대우

이정구 산업부 기자, 조유미 주말뉴스부 기자, 김윤주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기 테크부 기자, 한예나 경제부 기자, 양승수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