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火傷) 입은 뒤로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5층 ‘PG Lab’ 작업실. 35㎡(약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엄문희(61)씨가 재봉틀 앞에 앉아 화상 환자를 위한 의류를 만들고 있었다. 쇼핑몰 사무실에서 일하던 엄씨는 지난 2014년 전기 합선 화재로 전신 화상을 입었다. 손가락과 연골, 인대가 모두 손상됐다. 손가락 마디가 접히지 않는 탓에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바늘을 잡았지만, 엄씨는 옷을 만들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PG Lab은 작년 5월 한강성심병원에 문을 열었다. 의료진과 의료사회복지사, 중증 화상 환자들이 모여 ‘화상 압박옷’을 만드는 곳이다. 화상 환자들은 후유증으로 가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상 압박옷을 입으면 증상이 덜하다. PG Lab의 주 고객은 한강성심병원 화상 환자들이지만, 다른 병원 환자도 홈페이지를 통해 화상 압박 옷을 주문한다고 한다. 지난 14일에는 ‘화상 환자를 위한 압박 의복 및 그 제조법’으로 특허도 출원했다. 압박옷 기능 향상을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2019년 집에서 난 화재로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3년간 병원 생활을 한 정승애(46)씨도 PG Lab에서 일한다. 그는 “나같이 중증 화상 상처를 가진 사람도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했다. 2018년 집에서 가스레인지가 폭발해 반신 화상을 입은 유경선(50)씨는 PG Lab에서 일한 돈으로 부모님께 생애 첫 용돈을 드렸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라탕도 한턱 쐈다”며 “자식들이 나를 응원해 줄 때 일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업치료사 김미견(46)씨도 이들과 함께 압박옷을 만든다. 그는 화상 환자들이 압박옷을 주문하면 몸에 맞게 치수 재는 일을 담당한다. 김씨는 “화상 환자를 매일 보는 일을 하다 보니 PG Lab 일을 제안받았을 때 선뜻 응할 수 있었다”며 “환자들이 내가 치수를 잰 압박옷을 입고 편안하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차다”고 했다.
PG Lab 설립 아이디어를 낸 건 의료사회복지사 황세희(48)씨다. 병원에서 화상 환자들을 만나 온 황씨는 화상 환자들이 자립하고 일자리를 가질 방법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대만의 압박옷 제작 전문 기업인 ‘선샤인 복지재단’에서 영감을 받아 2020년 9월 화상 압박옷 제작 전문가 양성 교육을 시작했다. 2022년부터 작년 12월까지 대만 재단으로부터 신체 측정법과 같은 전문 기술도 전수받았다. 황씨는 현재 PG Lab 대표를 맡고 있다. 황씨는 “화상 압박옷 한 벌이 만들어질 때마다 화상 환자 한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뿌듯함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