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동안 짓는다 짓는다 희망 고문만 하고 있네요. 살아생전에 타보긴 하려나...” “이러다 아파트 다 낡아서 재건축할 때 돼야 개통하겠네.”

지난 25일 서울 위례신사선 경전철 사업자 공모가 유찰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시민들 원성이 빗발치고 있다. 시민들은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 서울시 등도 항의 방문한다는 계획이다. 위례신사선은 4만6000가구가 사는 위례신도시와 서울 강남을 연결하는 노선이다. 2008년부터 민자 사업으로 추진했으나 사업자들이 잇따라 사업을 포기하면서 17년째 착공도 못 하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서울 서부선 경전철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노선이 지나는 은평구 등 서울 6구 주민뿐 아니라 서부선의 연장 노선으로 계획된 경기 고양은평선 주변 주민들까지 불안해하고 있다.

최근 서울 경전철 건설 사업이 줄줄이 표류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 중인 경전철 노선은 9개. 총사업비는 10조3000억원이 넘는다.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이후 추가로 지하철을 짓지 않고 경전철로 방향을 바꿨다. 지하철의 사각지대를 공사비, 운영비가 덜 드는 경전철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원자재 값, 인건비 등 비용이 급증했고, 사업자들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재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용 부담이 불어나 현재 사업비로는 도저히 공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경전철 사업을 우후죽순 추진하면서 사업의 경제성을 따지는 기재부도 더 깐깐하게 검토하는 추세다. 경전철 사업은 기재부의 민간투자 사업 심의위원회 심사(민투심)나 예비타당성 심사(예타)를 통과해야 추진할 수 있는데 이를 통과하기도 까다로워진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9개 노선 중 실제 공사 중인 곳은 동북선과 위례선 등 2곳뿐이다. 동북선은 현재 공정률이 41.2%로 2026년 개통하는 게 목표다. 위례신도시 내부를 오가는 위례선은 다른 경전철과 달리 지상을 달리는 트램(노면전차)으로 짓는다. 구간이 짧아 상대적으로 사업 속도가 빠르다. 내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사업 진행 속도가 가장 느린 노선은 민자로 추진 중인 위례신사선과 서부선이다. 위례신사선은 사업자로 선정된 삼성물산과 GS건설이 공사비 증액 등을 요구하며 잇따라 사업을 포기해 착공 시기도 불투명하다. 서울시가 지난달 총사업비를 1조4847억원에서 1조7605억원으로 2758억원 늘리고 새 사업자를 찾는 공고를 냈지만 지난 25일 마감 시한까지 신청서를 낸 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서울시는 다음 달 초 사업비를 더 늘려 재공모한다는 계획이다. 위례신사선은 다른 경전철과 달리 위례신도시 주민들이 낸 분담금으로 일부 비용을 충당한다. 그래서 주민들 원성이 더 크다. 위례신도시 주민들은 입주 당시 위례신사선 건설비 명목으로 가구당 약 700만원씩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냈다. 위례신도시 주민들은 2013년 이후 차례로 입주했는데 10년 넘게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부선은 2021년 두산건설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했으나 4년째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안 그래도 공사비 문제가 걸림돌이었는데 최근 투자자 중 한 곳인 GS건설이 컨소시엄에서 빠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비를 증액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강북횡단선과 목동선은 각각 지난 6월과 7월 기재부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 강북횡단선은 노선이 긴 데다 북악산 등을 통과해 도심 노선에 비해 수요가 적은 점이 문제로 꼽힌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노선과 정차역 등을 조정해 예타를 다시 신청한다는 계획이지만 전문가들은 “구간을 나누는 등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목동선은 기존 지하철 2·5호선과 노선이 겹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목선은 지난 6월 예타를 통과해 기본 계획을 만들고 있다. 2005년 사업을 시작한 지 19년 만에 예타를 통과한 것이다. 면목선은 처음에 민자로 추진했다가 사업자를 구하지 못해 시가 직접 하고 있다.

난곡선은 예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안에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사업비를 증액해 경전철을 지은 뒤에는 운영 적자가 걱정이다. 이상욱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가 운영 중인 경전철 2개 노선(우이신설선·신림선)의 누적 적자는 2500억원에 달한다. 반면에 ‘교통 복지’ 차원에서 경전철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고준호 한양대 교수는 “예를 들어 난곡선은 교통이 불편한 관악구 난향동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전철(輕電鐵)

‘중(重)전철’이라고도 불리는 일반 지하철과 달리 객차가 작고 가벼운 전철을 말한다. 보통 객차 2~4량을 연결해 운행하며 고무 바퀴가 달린 경전철도 있다. 상대적으로 공사비, 운영비가 덜 든다. 서울 우이신설선, 김포 골드라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