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두껍게 올린 화장도 콧잔등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눈가의 마스카라가 번져서 마치 판다 같은 모습이 됐다. 수정 화장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분. 이마저도 타자가 아웃되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췄다.
31도의 폭염 속에서 흘러내리는 땀에 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몸치인데, 어떻게 춤을 추고 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간신히 팀 공격이 끝날 때까지 버텼지만, 수비 타임 춤이 이어진다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통보를 받았다. 삼진아웃 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데 벌레 한 마리가 다리에 붙었다. 평소 같았으면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경기를 일으켰겠지만, 많은 사람이 치어리더 응원단상을 보고 있어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1초가 1시간같이 느껴졌다.
치어리더들은 모두 밝게 웃고 있었다. 단 한 명, 일일 체험을 하는 기자만이 줄곧 찡그린 표정이었다. 그러고 다음 날, 지독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고막이 아플 정도로 크게 울리는 앰프(amp)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야구장의 꽃, 치어리더
프로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출범 43년 만에 최초로 1천만 관중을 돌파한 올 시즌 누적 관중 수는 지난 9월 28일 기준 1081만4314명으로 집계됐다. 스포츠문화 평론가인 장원재 전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유독 프로야구가 많은 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법은 ‘치어리더’”라고 말했다. 한국의 치어리딩에는 선수 한 명당 한 곡씩 응원가가 있고, 아웃 카운트 송이 있으며, ‘약속의 8회’와 같은 구단별로 특색 있는 떼창 응원법이 있다. 장 교수는 “폭발적인 관중 증가의 배경에는 ‘2030′ 여성 팬들의 증가가 결정적인데, 치어리더가 경기장에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불어넣어 진입 허들을 낮췄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현상에 외신도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KIA 타이거즈 구단 소속 치어리더 이주은씨의 삼진아웃 송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NYT》는 “매우 여유로운 춤(삐끼삐끼)을 추는 한국 프로야구 치어리더들의 영상이 소셜미디어(SNS) 알고리즘을 장악하며 수백만 명의 흥미를 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프로야구 열풍은 치어리더에 대한 관심도 함께 불러왔다. KIA 타이거즈 김한나(34)·박신비(24), 삼성 라이온즈 김하연(26)·정유미(26), LG 트윈스 우혜준(22), 한화 이글스 김연정(33) 치어리더와 홍창화(44) 응원단장을 만나 치어리더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반인보다 3시간 늦게 살아가는 사람’
평균 연습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일주일 내내 연습합니다. 경기가 있는 날은 5시간 전 먼저 출근해 안무를 맞춥니다.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는 연습실에 모여서 하루 종일 팬 분들께 선보일 새로운 안무를 짭니다.”(김하연)
친구들과 만날 시간도 없을 것 같아요.
“네. 야구는 끝나는 시각이 정해져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항상 미안한 일이 생겨요. ‘아,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은데…’라고 양해를 구하는 일이 다반사죠. 그래서 웬만하면 저녁 약속을 만들지 않으려 해요.”(김한나)
김연정씨는 치어리더를 ‘일반인보다 3시간 늦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출근해야 하는 일반인들은 아침 일찍 기상하여 회사에서 일을 하고, 오후 6~7시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치어리더는 일반인보다 딱 3시간 늦은 삶을 산다. 아침 9~10시쯤 기상하여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연습실이나 경기장으로 향한다. 팀원들이 모이면 경기에서 선보일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TV 중계 화면에 나오는 걸그룹과는 달리 팬들과 직접 대면하는 직업인 만큼, 춤 하나하나 디테일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끊임없이 연습, 또 연습하는 이유다.
LG 트윈스 치어리더들은 대기실, 연습실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연습했다. 연습실에서는 사복을 입고 연습하다가도 최대한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 바로 단복으로 갈아입고 춤을 추기도 했다. 거울을 보며 끊임없이 동작을 체크하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반복해서 연습했다.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연습 공간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동작을 맞췄다. 팔을 드는 각도를 맞추고, 경기 중간중간 예정된 특별 공연을 준비했다. 응원 멘트를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경기는 주로 저녁에 치러진다. 이들은 경기 전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경기가 끝난 후 귀가하여 꿀맛같은 야식을 즐긴다고 한다. 우혜준 씨는 “(야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꾸미기는 셀프(self), 몸매 관리는 필수
화장이나 머리 세팅을 해주는 인력이 따로 있나요?
“아뇨, 직접 합니다. 처음에는 서툴지만, 팀원들에게 화장품을 공유받고, 화장법도 전수받으면 어느 정도 화장 스킬(skill)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꾸밀 줄 모르다가, 치어리더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꾸미는 법을 알게 돼 정말 예뻐지는 친구들이 많아요.”(정유미)
걸그룹 네이처(NATURE) 출신 우혜준씨는 “속눈썹을 혼자 붙이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걸그룹 활동 당시에는 숍에서 메이크업·헤어 세팅을 받았는데, 치어리더가 된 이후 모든 꾸밈이 자기 몫이 되어 적응이 어려웠다고 한다.
완벽한 화장 상태를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요.
“끊임없는 수정 화장이죠. 특히 얼굴 쪽은 땀이 났다 하면 바로 화장이 무너지기 때문에, 최대한 겹겹이 베이스 화장을 올려야 화장이 쉽게 지워지지 않아요. 화장이 두껍다 보니 치어리더들 대부분 피부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김연정)
격한 움직임에도 헤어가 전혀 헝클어지지 않던데요.
“‘바삭바삭’ 소리가 날 때까지 스프레이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응원하는 동안은 찰랑찰랑한 헤어 스타일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집에 가서 머리를 감을 때는 고역이에요. 뭉텅이로 달라붙어서 샴푸질을 세 번은 해야 하죠.”(박신비)
김연정씨는 두꺼운 화장 때문에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과거 치어리딩을 하던 도중, 화장품으로 인한 알레르기가 올라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느껴졌지만 이미 화장이 된 얼굴에 손을 댈 수 없었기에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찬물 세수를 해 가려움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물 세안을 했는데도 화장이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땀에 강한 방수(waterproof) 제품으로 화장했기 때문이다. 김하연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머리 장식을 달고 응원에 나서기도 했다.
지금은 ‘개성의 시대’…치어리더 되는 길은 ‘열린 문’
인터뷰에 응한 치어리더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치어리더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보통은 치어리더 에이전시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오디션 과정을 거쳐 채용되지만, 정유미씨의 경우 친구였던 김하연씨의 권유로 치어리더 일을 시작하게 됐다. ‘경성대 전지현’으로 불렸던 김연정씨는 대학에 다니다 길거리 캐스팅됐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치어리더는 ‘신체 조건’을 많이 따진다던데요.
“예전에는 키나 몸무게를 많이 봤던 게 사실이에요. 보통은 167cm에 50kg대를 선호했죠. 그렇지만 요새는 허벅지가 조금 두껍더라도 ‘꿀벅지’라 불러주고, 볼살이 있으면 귀엽게 봐주시는 팬 분들이 늘어났어요. 여성 팬들의 비율도 증가했고요. 평균 신장도 줄어들어서 160cm 정도도 치어리더가 될 수 있어요. 몸무게도 딱 봤을 때 ‘살쪘다’ 정도만 아니면 괜찮아요.”
그렇지만 의상이 굉장히 타이트하잖아요.
“몸무게 제한이 없더라도, 의상이 너무 타이트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를 하게 돼요. 노출이 많은 의상이라 조금이라도 살이 붙으면 티가 나서, 관리가 필요할 때는 적당히 식단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 곳곳 누비며 응원
프로야구 경기는 각 구단의 구장에서 진행되며, 홈팀과 원정팀으로 나뉜다. 통상적으로 홈경기는 1루 쪽 좌석에 앉고, 원정팀은 3루에 앉게 된다(KIA 경기장은 이와 정반대다). 대표적인 경기장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KIA)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삼성) ▲서울종합운동장(LG·두산) ▲수원KT위즈파크(kt) ▲인천SSG랜더스필드(SSG)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한화) ▲사직야구장(롯데) ▲창원NC파크(NC) ▲고척스카이돔(키움)이다. 경기장을 옮겨 다녀야 하는 데 대해 치어리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국을 누비는 게 힘들진 않나요.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응원하는 게 재미있고, 제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좋아서 행복하게 이동하고 있어요.”(김한나)
숙소가 제공되나요?
“구단마다 달라요.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의 경우는 대부분이 대구에서 거주해 홈팀 경기의 경우 별도로 이동할 필요가 없죠. KIA 타이거즈 치어리더는 대부분이 서울에 거주 중이라 숙소가 제공되고 있어요.”(복수의 치어리더)
귀가는 어떻게 하나요.
“사람마다 달라요. 수도권 구단의 경우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요, 지방 구단은 다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해 소속사에 도착한 후 숙소로 가거나, 각자 귀가하고 있습니다.”(복수의 치어리더)
“우천 취소되면 일당의 반만 받아”
9월 6일, KIA 타이거즈 인터뷰를 간 날은 하필이면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조금 맑은가 싶다가도, 좁쌀 비가 연신 그라운드를 적셨다. 다행히 경기 시작 시각이 가까워질 때 즈음엔 맑은 하늘이 나와 무사히 인터뷰를 마치고 1회 초가 시작됐지만, KIA 타이거즈의 삼진아웃 송인 ‘삐끼삐끼’ 노래가 나오자마자 빠르게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장대비가 쏟아졌다. 관객들은 하나둘씩 우산을 펼쳐 들었지만, 치어리더들은 우비만을 입고 관객을 향해 밝게 미소 지었다. 이들은 ‘우천(雨天) 중단’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비를 맞으며 최선을 다해 춤을 췄다.
응원하다 비가 내리면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일단 헤어랑 화장이 전부 망가지죠. 빗물이 눈에 들어가 눈을 뜨기도 힘들고요. 의상도 물에 젖어서 무거워져요. 팬 분들의 응원 참여도가 현저히 낮아지는 것도 속상하죠.”(김연정)
일당도 줄어들 것 같아요.
“몇 회에 우천 취소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요, 5회가 지난 뒤 우천 취소되면 그날 경기를 전부 치어리딩 한 것으로 인정해요. 그 전에 우천 취소가 되면 그날 일당의 딱 반을 받게 됩니다.”(김한나)
다행히 이날 경기는 우천 중단이 된 지 40여 분 만에 비가 그쳐 정상적으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비 내린 단상 위에서 치어리더들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춤을 췄다. 우천 중단으로 인해 경기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이들은 상관없다는 듯 팬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간절히 경기가 재개되길 바랐던 팬들은 치어리딩을 보며 더욱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치어리더, 최소 1년은 경험해봐야”
프로야구 흥행과 더불어 치어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김연정씨는 “최소 치어리더로 활동하며 사계절은 경험해봐야”라고 조언했다.
1년은 경험해봐야 한다고 강조하신 이유가 뭔가요?
“이 일을 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해요. 그리고 꼭 이 직업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을 했을 때 끈기 있게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잖아요. 그냥 단순히 ‘언니들처럼 예쁘게 꾸미고 춤추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치어리더는 이런 고충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여러 직업을 접해보는 걸 추천해요.”
김연정씨의 말을 들은 홍창화씨도 의견을 보탰다.
“응원단이 되는 길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국체육대학교 천마응원단 소속이었다가 운 좋게 좋아하는 구단의 오디션을 보고 채용됐어요. 살다 보면 분명히 찬스가 옵니다. 그 찬스가 한 번 오고 안 오는 게 아니고, 한두 번 더 와요. 간절하고 절실한 사람은 그 찬스를 잡아 성공하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하셔서 제 뒤를 이을 멋진 응원단장이 탄생하는 걸 지켜보고 싶습니다.”
치어리더들은 제각기 좋아하는 팀도, 치어리더로 활동하고자 하는 팀도 달랐다고 한다. 다른 구단에서 치어리딩을 하다가 소속사의 권유로 응원 구단을 옮긴 치어리더도 있다. 심지어 박신비씨의 경우, 야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자신이 치어리딩 하는 팀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응원을 하며 팀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좋으면 자부심을 느끼나요.
“당연하죠. 치어리더들끼리 모였을 때, ‘1등 팀이라 좋겠다’는 식의 부러움 섞인 이야기가 나와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정말 뿌듯하죠.”(박신비)
“응원하다 벅찬 감정 들기도”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팬 분들과 하나가 되어 응원할 때요. 가끔 눈물이 날 것같이 벅찬 감정이 들기도 해요. 밤이 되고, 휴대전화 플래시라이트를 켠 채 응원하는 모습을 단상 위에서 지켜보면 형용할 수 없이 행복합니다. 제가 치어리더가 된 이유이기도 해요.”(김한나)
팬 분들을 다 기억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모두 기억합니다. 자주 찾아주시는 팬 분은 눈에 익어서 이상하게 더 반갑더라고요.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건 정말 행복한 것 같아요.”(우혜준)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팬 분들이랑 같이 열심히 응원해서 KIA 타이거즈가 1등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김한나)
“현재 KIA 타이거즈의 성적이 너무 좋습니다.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까지 응원 열심히 해주시고 가을 야구에서 꼭 만나기를 바랍니다.”(박신비)
“팬 분들께 ‘덕분에 응원 열심히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김하연)
“날씨가 너무 더워서 쓰러질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음료수나 선풍기를 준비해주시는 팬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정유미)
“제가 아이돌로 활동할 때부터 꾸준히 좋아해주신 팬 분들께 항상 감사하고요, 저도 보러 오고, 야구도 보러 오시는 분들을 보며 행복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우혜준)
“치어리더는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이번 시즌에도 팬 분들 덕분에 열심히 응원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김연정)
“무엇인가에 푹 빠져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옵니다. 그 기회를 꼭 붙잡으세요. 한화 이글스 파이팅입니다.”(홍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