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표결일인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열림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118차 촛불 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 맞은 주말인 7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열리는 국회의사당 앞엔 속속들이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경찰은 여의도에 기동대 중대 140여개를 배치, 만일의 소요 사태에 대비했다. 이날 오후 3시 50분쯤 경찰 비공식 추산 약 4만5000명이 여의도에 몰리는 등 수많은 인파가 여의도를 찾았다.

이날 오후 12시 3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서로 인근엔 ‘탄핵이 평화다’ 등 손팻말을 들고 파란 목도리를 맨 시민들이 속속 주집회가 열리는 공간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방면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인근엔 ‘전교조울산지부’ 등이 쓰인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 경외를 한 바퀴 도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윤석열 탄핵’ ‘윤석열을 거부한다’ 등 손팻말을 들고 “윤석열을 탄핵하자”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날 경찰은 혹시 모를 소요 사태에 대비해 여의도에만 100개가 넘는 기동대 중대를 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진보 단체 집회가 열리는) 여의도에 130~140개 정도 기동대 중대를 배치했고, (보수 단체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엔 10개 정도 기동대 중대를 배치했다”고 했다.

1km가 채 안 되는 국회 앞 국회대로는 기동대 버스로 가득 찼다. 국회 우측 여의도벚꽃길 쪽에 버스 6대가 정차한 것을 시작으로 지하철 5호선 영등포시장역 방향으로 넘어가는 여의2교까지 기동대 버스 60여대가 정차돼 있었다. 국회 건너편 도로에도 비슷한 숫자의 기동대 버스가 정차돼 있었다.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 모여있는 시민들. /고유찬 기자

국회의사당 입구 건너편엔 범국민촛불대행진을 예고한 진보 단체가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등 문구를 전광판에 띄워두고 있었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긴급 기자회견을 틀며 이들은 ‘윤석열 탄핵’ 등을 외쳤다.

이날 오후 3시쯤 국회의사당역 인근에 모인 시민들은 ‘민주주의 수호하라’ ‘내란죄로 처벌하라’ 등 손피켓 또는 ‘탄핵하라’는 문구가 쓰인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촛불을 켜기 위해 양초를 준비해온 시민들도 있었다.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인근에서 진행되는 탄핵 저지 집회가 이재명 대표의 범죄혐의와 조국 입시비리를 언급하며 탄핵 저지를 주장하자 지나던 시민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라며 반대되는 주장을 외쳤다.

국회의사당역 인근은 인파로 발 디딜틈조차 없었다. 도로, 인도 구분할 것 없이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있었으며, 화단 위로 올라선 시민들도 보였다. 인근 카페 좌석은 모두 차 있었으며, 빵이 놓여있어야 할 진열대는 텅 비었다. 이동을 위해 길을 나서면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밀릴 정도였다.

이날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시민들이 여의도를 찾았다. 경기 일산에서 아내와 10세, 7세 딸 둘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 광장을 찾았다는 김상헌(43)씨는 “대국민 담화를 보고 짜증나서 국회 앞 시위로 나왔다”며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했는데 그런 내용이 없고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반드시 국민 손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나왔다”고 했다.

탄핵소추안 표결 소식을 듣고 급하게 광주광역시에서 상경한 최명길(56)씨는 시위 참가를 위해 기차를 타고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최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민학교 학생이었고 아직도 공포가 생생한데 계엄령 이야기를 듣고 간담이 서늘했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며 “오늘 탄핵이 만약 부결된다면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에서 온 고등학생 이강우(17)군도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엄령을 실제로 겪을 줄 몰랐다”며 “오늘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7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시민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고유찬 기자

한때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도 이날 여의도에 나왔다. 줄곧 보수 정당 지지자였던 의사 박모(57)씨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었는데 막무가내식으로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고 의사들을 적으로 돌려버리는 걸 보고 실망했다”며 “이후로 뉴스를 안 보고 있었는데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을 보고 학을 뗐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던 한정우(51)씨도 대국민 담화에 분노해 중학생 아들 한지호(14)군을 데리고 여의도에 나왔다. 한씨는 “절박했다고 하는데 전혀 진정성이 없다”며 “여론을 고려했으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계엄령 선포를 대체 왜 한 건지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았어야 했다”고 했다. 이어 “아들이 아빠도 윤석열 찍었냐고 물어봤는데 너무 낯부끄러웠다”며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한편 이날 오후 12시 30분쯤 여의도의 대규모 탄핵 찬성 인파 속 금산빌딩 앞엔 100여명 규모의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위헌적 탄핵 반대!’ ‘한동훈은 제2의 김무성!’ 등 손팻말을 든 이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헌법 파괴한 졸속 탄핵을 반대한다” “가짜 뉴스조차 걸러내지 못한 졸속 탄핵을 반대한다” “북한 적대시한 게 탄핵 사유라는 나라 팔아넘기는 졸속 탄핵 반대한다” 등 탄핵 반대를 외쳤다. 이들 중 한 사람이 “이재명이 죽인 게 7명이다”라고 외치자 주위를 지나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미친XX들” “윤석열 탄핵” 등을 외치며 응수했다.

2시간여가 지난 오후 2시 30분쯤엔 탄핵 저지 집회 인원이 300여명으로 늘었다. 이들 시민들은 빨간색 목도리를 두른 채 ‘탄핵 저지’라고 쓰인 손 피켓을 들고 “이재명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서울 중랑구에서 온 황모(44)씨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마음에 남은 계엄 독재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비상계엄을 선포하다니 성급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탄핵, 예산 삭감 등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해 야권이 원하는 대로 나라를 움직이고 행정부가 힘을 쓸 수 없게 만든 상황이 대통령 탄핵 시 더욱 심해질 거라고 보고 탄핵 저지 집회에 참여했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에서 온 박모(68)씨는 “더불어민주당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검사들을 탄핵하고 법관들을 협박하는 등 행정부가 국정을 운영할 수 없게 손발을 묶고 행정을 마비시킨다”며 “야권도 저지할 필요가 있다는 마음에 탄핵을 저지 집회에 합류했다”고 했다. 경기 광주에서 왔다는 조모(76)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텐데 내 손주들이 더불어민주당 집권 아래 살아가는 일만은 막고자 집회에 참석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