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응원봉 든 시위 참가자 -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는 시위 참가자들. /장련성 기자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엔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인파 15만명(경찰 추산)이 몰렸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에 놀라 시위 현장으로 달려왔다는 20~30대 젊은 참가자가 많았다. 이들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비상계엄이 21세기에 선포됐다”고 했다. 집회 현장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 ‘단결투쟁가’ 같은 전통 민중 가요도 울려 퍼졌지만, 젊은 세대는 로제의 ‘아파트’,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나가’ 등 아이돌 노래도 자연스럽게 불렀다. 대학 점퍼를 입은 대학생들은 “영원한 건 절대 없어”(지드래곤 ‘삐딱하게’)라는 가사를 흥얼거렸다.

종이컵에 끼운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이 등장한 것도 과거와는 다른 시위 풍경이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나 2008년 광우병 집회,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때는 실제 촛불이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반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집회는 2030이 들고 나온 형형색색 아이돌 응원봉으로 콘서트장을 방불케했다.

보이그룹 ‘NCT’의 직육면체 응원봉, 다이아몬드 모양의 ‘샤이니’ 응원봉, 사슴뿔을 형상화한 ‘오마이걸’ 응원봉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래퍼 ‘우즈’의 응원봉을 들고 있던 대학생 김모(21)씨는 “피켓, 촛불처럼 획일화된 도구보다는 나만의 물건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며 “촛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응원봉은 24시간 빛나고, 손목에 걸 수 있는 끈도 있어 사용하기 편하다”고 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부결되고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되자, 상당수 참가자가 동요했다. “반역자! 친일파! 개새X들”이라는 욕설도 들려왔다. 직장인 이모(24)씨는 “국민의힘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당인지 모르겠다”며 “내란에 동조한 그 당을 선거에서 찍어줄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5시 45분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도 사람들이 몰려왔다. 당사 앞 인파는 10분 만에 20여 명에서 수백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내란동조 국힘해체”라는 구호를 외쳤다. 당사 건물 테라스에 당 관계자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시민들은 이들에게 삿대질하며 “너네들이 나라 망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생 최모(25)씨는 이날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집단 이탈한 데 대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의원들이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수호하겠다며 회의장을 떠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날 집회엔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뽑았다는 사람들도 참석했다. 의사 박모(57)씨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었는데 막무가내식으로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고 의사들을 적으로 돌려버리는 걸 보고 실망했다”며 “이후로 뉴스를 안 보고 있었는데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을 보고 학을 뗐다”고 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였다는 한정우(51)씨는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계엄령 선포를 대체 왜 한 건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당사 인근 한쪽엔 친여 성향 유튜버 1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김 여사 특검법이 부결됐다는 소식을 듣자 “이겼다”며 환호했다.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인근에도 300명 규모의 탄핵 저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이 “졸속 탄핵 반대한다” 같은 구호를 외치자 지나가던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앉아있네”라고 항의했다. 일부 야당 지지자들 중 “미친XX들”이라며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동작구에서 온 박모(68)씨는 “더불어민주당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검사들을 탄핵하고 법관들을 협박하는 등 행정부가 국정을 운영할 수 없게 손발을 묶고 행정을 마비시키고 있다”며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날 여의도에 기동대 140여 중대를 배치해 충돌 사태에 대비했다. 소요 상황도 있었다. 낮 12시 20분쯤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머리에 시너를 뿌리며 분신을 시도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 등이 우려되자 9호선 국회의사당역·여의도역에서 각각 약 3시간, 1시간 동안 열차가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경찰 비공식 추산 2만명,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모여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친한계 의원 명단을 스크린에 띄우고 “이 새X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어야 합니다”라며 의원들의 지역구와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다. 전광훈 목사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향해 “대통령 날아갔다 이 새X야”라며 “김건희 여사님 나한테 밥 한번 사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