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대학교 3학년 박모(23)씨의 시간은 지난 29일 오전 9시 1분에 멈췄다. 제주항공 참사 직전 사고기 안에 있던 어머니 오인경(49)씨와 마지막 메시지를 주고받은 시각이다.

어머니는 참사 3분 전인 오전 9시 아들에게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 하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씨가 “언제부터 그랬는디”고 하자 9시 1분 “방금” “유언해야 하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들은 “어쩐대”(9시 1분) “왜 전화가 안 돼”(9시 37분)이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박씨는 참사로 어머니와 아버지 박승호(54)씨를 모두 잃었다. 박씨는 ‘새 때문에 착륙 못 한다’는 어머니의 말에 “맨날 농담하는 우리 엄마, 또 쓸데없는 소리 하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부모는 참사로 완전히 타버린 날개 인근 좌석에 앉아 있었다.

박씨는 부모 시신 신원 확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체 꼬리만 남았다는 속보에 ‘우리 엄마 아빠 찾을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빨리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상주 노릇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와의 카카오톡 메신저 화면에 ‘읽지 않음’을 뜻하는 노란색 ‘1′ 글자가 지워지지 않은 채였다.

장인숙씨가 ‘작은 왕자님’으로 대화명을 저장한 막내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 창. /독자 제공

장안숙(59)씨는 지난 29일 오전 9시 24분 아들 조건영(35)씨에게 “하늘 위에 있어? 땅에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이 탄 비행기는 오전 8시 30분에 도착 예정이었지만 답은 없었다. 장씨의 휴대전화에 조씨는 ‘작은 왕자님’으로 저장돼 있다. 조씨는 귀국 전날인 28일 “컨디션 괜찮냐”는 어머니 메시지에 곧바로 “한숨 잤더니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마지막 대답이었다.

태국인 여성 킴카몬 차녹(45)씨는 동네 친구였던 종룩 동그마니(45)씨를 떠올리며 흐느꼈다. 동그마니씨는 서울 성북구 월곡동의 한 식당에서 일했다. 차녹씨는 이 식당에서 우연히 동그마니씨를 만났다고 한다. 차녹씨는 “타지에서 만난 태국인 친구였고 둘 다 월곡동에 살아 각별한 사이였다”며 “언제든 편하게 서로의 집에 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고 했다. 차녹씨는 “친구는 한국인 남편과 함께 지난달 29일 태국 여행을 갔다가 남편을 먼저 한국에 보내고 혼자 나중에 돌아오던 길에 변을 당했다”고 했다. 부모와 떨어져 태국에 거주 중이던 동그마니씨의 16·10세 자녀들은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세종시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2학년·3학년 자매는 가족과 함께 외할아버지 팔순 잔치를 하려 태국 여행을 다녀오다가 참변을 당했다. 자매를 포함, 어머니와 남동생,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모 가족 등 일가족 9명이 사망했다. 전남 화순의 한 고교를 다니던 1학년·3학년 형제도 아버지와 여행을 떠났다가 사망했다. 3학년 형은 올해 수능을 보고 대학에 최종 합격한 상태였다.

결혼 생활 내내 아픈 딸을 돌보다가 간신히 여유를 내 첫 외국 여행을 떠났다가 변을 당한 중년 부부도 있다. 이 부부의 친척은 “두 딸 중 28세 큰딸이 희소병을 앓아 스스로 생활이 불가능했다”며 “큰딸을 이모에게 맡겨두고 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했다. 큰딸은 부모의 사망 소식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25세 작은딸이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

광주광역시의 직장인 나모(42)씨는 “내년 과장 승진을 앞두고 바빠질 테니 효도 여행을 가겠다”며 장모 조모(61)씨와 아내 김모(39)씨, 두 자녀와 함께 태국에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몸이 불편해 함께하지 못했다는 장인(69)은 휴대폰에 ‘보물’이라고 저장해 둔 아내가 사고 전날 “여보 몸은 괜찮나요. 내일 아침에 도착하네요”라고 보낸 메시지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날 오전 공항 활주로 인근엔 승객 유류품이 쌓여 있었다. 기내용 캐리어와 가방 수십 개가 대부분 온전한 외형을 유지한 채 한가득 쌓여 있었다. 주인을 잃은 한 쇼핑백엔 태국에서 사온 것으로 보이는 과자 등 기념품이 빼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