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발부 판사) 어딨어.” “미친 판사X 찾아라!”
19일 오전 3시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들은 친윤 시위대 1000여 명은 “빨갱이 사법부를 처단하자”며 법원 건물로 돌진했다. 수십 명이 정문 울타리를 넘기 시작한 가운데, 누군가 “후문에 경찰이 없다”고 소리쳤다. 정문에서 도보로 150m 거리에 있는 후문으로 순식간에 4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일부 참가자가 “법원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고 만류하자 “좌파 프락치 꺼져라” “국민 저항권을 행사할 때다”라는 고성이 들렸다.
후문을 막아선 경찰 수십 명에게 군중은 돌멩이와 벽돌, 안전 고깔을 던져댔다. 경찰은 방패를 머리 위까지 치켜든 채 계속 밀려났다. 난동자들은 소화기와 안내선 봉, 게시판 등 철제 물품으로 법원 건물 외벽 타일과 유리창을 깨뜨렸다. 경찰 방패와 경광봉을 빼앗아 경찰을 구타했고, “북한으로 꺼져” “너희 가족 다 몰살해”라는 폭언도 했다.
“이러지 마시라”는 경찰을 끌어내 외딴곳으로 마구 밀치는 난동자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왔다. 일부 군중은 깨진 외벽 타일을 경찰에게 던지기까지 했다. 한 경찰은 타일의 날카로운 절단 면에 이마를 맞아 많은 피를 흘리기도 했다. 이날 사태로 경찰 42명이 다쳤고 이 중 7명은 중상을 입었다.
3시 21분쯤 정문 옆 당직실 창문을 깨고 들어간 난동자 30여 명이 안에서 잠겨 있던 청사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후문을 통해 현관문에 접근한 나머지 70여 명이 차단문을 완력으로 올리고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난동자들은 경찰에게 소화기를 난사했고, 로비는 완전히 뿌옇게 돼 있었다. 한 유튜버는 연신 “윤석열 대통령”을 외쳤다. “다 죽여버리자”고 고함치는 사람도 있었다.
난동자들은 법원 출입 시스템과 컴퓨터 서버에 물을 뿌리고, 법원 현판을 뽑아내 내동댕이쳤다. 일반인 진입이 불가능한 법원 구역인 3층의 보안문 잠금장치는 물론, 음료수 자판기와 정수기를 보이는 대로 부쉈다. 이들은 경찰 방패를 마치 전리품처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위로!” “밀어버리자!” “빨리 올라와!”라는 외침과 함께였다.
군중은 곧 7층 판사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판사실 문을 하나하나 발로 차서 열면서 윤 대통령 구속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았다. “어디 숨었어?” “없어” “다 부숴야지” 같은 대화를 나눴다. 같은 건물 8층에서 근무하던 해당 판사는 난동 이전 법원을 떠나 화를 면했다.
난동자들은 법원 1층 당직실의 컴퓨터와 모니터, 마우스 등을 대부분 파손했다. 2층 민원실 대형 거울과 유리 테이블은 산산조각 났다. 한 손엔 소화기, 한 손엔 쇠파이프를 들고 집기를 닥치는 대로 부수는 사람도 있었다.
법원 직원, 공수처 직원, 취재진, 민간인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 취재진의 방송 카메라를 탈취하거나 공수처 차량을 부순 뒤 관계자 2명을 때리기도 했다. 현장을 지나던 중학생을 붙잡고 “중국인 아니냐”고 추궁하다가 학생 아버지 항의를 받거나,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한다며 차를 쿵쿵 치는 일도 발생했다.
난동자 10여 명은 한 민간인을 에워싸고 “좌파 프락치”라며 집단 구타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나는 대구 사람”이라며 울기까지 했지만 난동자들은 그를 계속 짓밟았다. 현장 여기저기서 핏자국이 발견됐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법원 직원들은 옥상으로 대피했다.
경찰은 오전 4시부터 기동대 1400여 명을 투입, 본격 진압에 나섰다. 경찰이 “당신들은 건조물 침입, 퇴거 불응, 미신고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난동자들은 오히려 경찰에게 탈취한 울타리와 오토바이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저항했다. 일부는 경내 밖으로 밀려난 뒤에도 다시 달려들어 경찰과 몸싸움을 했다.
경찰은 건물 바닥에 “헌법 수호”를 외치며 드러누운 난동자들까지 모두 체포한 이후 오전 6시 7분 “질서를 회복했다”고 했다. 낮 12시쯤 서부지법을 찾은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TV에서 봤던 것보다 10~20배 참혹한 현장을 확인했다”며 “법원 내 기물 파손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여러 층에 시위대가 들어온 흔적이 있다”고 했다.
이날 오후까지도 서부지법 주변에 모인 시민들은 “전쟁이 난 건가?” “폭격 맞은 것 같다”며 웅성거렸다. 한 40대 남성은 “관공서 유리창이 깨지는 모습은 12·3 비상계엄 때 이후 다신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