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금융 허브에 위치한 세계 유명 은행들. 왼쪽부터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홍콩상하이은행(HSBC).

150억원대 불법 공매도 의혹을 받는 홍콩상하이은행 홍콩법인(HSBC)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국내법이 금지하는 무차입 공매도를 의도적으로 행한 증거가 없다는 취지다.

11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재판장 김상연)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HSBC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HSBC는 2021년 8월부터 12월까지 9개 상장사 주식 32만주, 합계 158억원 상당을 무차입 공매도 주문한 혐의를 받는다.

공매도란 특정 종목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해당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을 사서 되갚는 투자 전략을 말한다. 자본시장법 180조는 ‘미리 빌려둔 주식을 이용한 공매도’(차입 공매도)를 제외한 모든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없는 주식을 미리 파는 무차입 공매도는 시장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국내법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에선 공매도를 하기 전에 반드시 차액을 확정지어야 하는데, HSBC가 차액 확정 절차를 사후적으로 취하는 시스템을 가졌던 것은 맞다”고 HSBC의 무차입 공매도 정황을 인정했다. 하지만 “HSBC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은 회사 잔고관리시스템에 따라 자동으로 제출되는 것”이라며 “직원들이 규제 위반행위임을 알면서도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의도적으로 공모한 정황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검찰은 “트레이더들은 무차입 공매도가 범죄임을 명확히 인식한 상태에서 HSBC 대표 등과 공모했다고 보는 게 맞는다”며 항소 의지를 표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HSBC의 잔고관리시스템상 ‘공매도 주문이 가능한 수량’에는 이미 빌려온 주식 뿐 아니라 외부에서 차입이 ‘가능한’ 주식 수량까지 합산된다. 해당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불러오고, 이 사실을 소속 트레이더들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또 한국의 무차입 공매도 형사처벌 규정의 도입 경위가 회사 차원에서 공유됐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2021년 4월 불법 공매도 형사처벌 규정이 신설된 후 무차입 공매도 혐의로 글로벌 IB가 기소된 첫 사례다. 서울남부지검은 HSBC가 공매도를 위한 주식 차입에 드는 비용을 아끼고 차입한 주식 일부를 판매하지 못하는 재고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차입 공매도를 실행한 것으로 보고 HSBC를 작년 3월 재판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