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김하늘(8)양을 살해한 40대 교사 A씨는 우울증 등을 이유로 이미 4차례에 걸쳐 200일가량 병가와 휴직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이 학교의 정규직 교사다.
자살까지 고민했을 정도로 증세가 심했던 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변 교사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사실상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불가능한 교사였는데도 범행을 저지를 때까지 아무도 이를 막지 못한 것이다.
◇우울증으로 병가·휴직 반복… 범행 나흘 전 동료 교사 폭행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18년부터 우울증을 앓던 A씨는 2021년 10월과 2023년 3월, 작년 10월 병가를 썼다. 우울증 등을 이유로 두 달가량씩 병가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작년 12월 9일부터는 우울증을 이유로 6개월간 질병 휴직을 냈다. 교직원은 1년에 두 달까지만 병가를 낼 수 있기 때문에 휴직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A씨는 작년 12월 30일 돌연 복직했다. 동료 교사들은 “갑자기 돌아와 의아했다”고 전했다.
지난 4일 개학 날부터 현장에 돌아온 A씨는 곧바로 이상 행동을 보였다. 지난 5일 “교육청 업무 포털 접속이 느리다”며 이용하던 학교 컴퓨터를 부수어 망가뜨렸다. 6일에는 동료 교사가 “함께 퇴근할까요” “말씀 좀 나눌까요”라고 하자 갑자기 팔로 동료 교사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했다. 당시 A씨는 동료 교사에게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해야 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3년 전 A씨와 함께 근무했던 한 초등학교 교사는 “A씨가 회의 때 싸우듯 소리치거나 복도에 서 있는 교사들을 몸으로 치고 지나가는 등 종종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주변에 가까운 교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앓던 A씨가 학교 현장에서 잇따라 폭력적인 행동을 했는데도 학교 측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대신 A씨에게 구두 경고를 하고 대전시교육청에 상황을 신고했다고 한다. 대전시교육청은 10일 오전 장학사를 파견해 사건 조사를 진행했다. A씨에 대한 대면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A씨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교장, 교감 등을 대상으로 1시간가량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은 학교 측에 A씨를 학생들과 분리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곧바로 이행되지 않았다. A씨는 이날 오후 1시쯤 학교 인근 마트에서 길이 28㎝ 흉기를 구입했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쯤 돌봄 수업을 마치고 혼자 나오는 김양을 근처 시청각실로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다. “책을 준다”며 김양을 유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막을 기회 ‘최소 세 번’ 있었다”
교육계에서는 “범행을 막을 기회가 적어도 세 번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A씨는 6개월간 질병 휴직을 냈다가 한 달도 안 돼 돌연 복직했는데 학교는 그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예규와 규정에 따라 의사 소견서만 받고 복직을 허가했다고 한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장은 “A씨가 오랫동안 정신 질환을 앓았던 만큼 심층 면접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했어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지난 5~6일 잇따라 폭력적인 행동을 했지만 계속 출근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를 바로 교육청 ‘질환교원심의위원회’에 회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도 교육청은 A씨처럼 심각한 질환을 앓는 교사를 학교 현장에서 배제하기 위해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두고 있다. 문제가 확인되면 교육감이 직권으로 휴직 처분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청 모두 이러한 조치를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교육계 인사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교권 침해’ 등을 들며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실제 대전시교육청 질환교원심의위원회는 2021년부터 한 차례도 열린 적이 없다고 한다.
김양은 돌봄 수업을 마치고 혼자 교실을 나섰다가 A씨 범행의 표적이 됐다. 누군가 김양 곁에 있었다면 범행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현재 실효성 있는 규정은 없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늘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에는 ‘학생이 귀가할 때 보호자나 보호자가 지정하는 대리자가 동행한다’는 내용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