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국가대표 출신 전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이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의 한 의원에서 미용 시술을 내걸고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투약한 의사와 가짜 환자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검거됐다. 의사와 의원 관계자들은 ‘생일 기념’ ‘출소 기념’ 등으로 마약을 제공해 투약자들을 마약 중독에 빠뜨렸다. 특히 마약 투약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국가대표 출신의 전 프로야구 선수 오재원(40)씨도 이 의원에서 마약을 투약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 투약한 60대 이비인후과 의사 A씨와 그의 배우자인 총괄실장 등 의원 관계자 15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검거해 송치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A씨를 구속해 검찰에 넘겼으며 오씨 등 투약자 100명도 함께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강남구 청담동의 한 의원에서 미용 시술을 빙자해 내원자 105명에게 수면마취제 계열 마약류(프로포폴·레미마졸람 등)를 총 1만7216회에 걸쳐 불법 투약하고 41억4051만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씨는 프로포폴 등의 수면마취제를 16차례에 걸쳐 본인에게 직접 투약한 혐의도 받는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불법 마약 투약 정황이 드러난 의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거한 의료용 마약류.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이들의 마약 영업 수법은 환자들을 마약류 중독에 빠뜨려 이를 돈벌이로 삼는 ‘마약 판매상’과 비슷했다. 횟수와 용량에 따라 결제 액수를 정하고 수요가 높은 투약자들을 대상으로 일요일 영업을 진행했다. 또 생일을 맞은 투약자들을 대상으로는 ‘생일 기념’, 구치소에서 출소한 이들에게는 ‘출소 기념’ 등의 명목으로 서비스 투약을 제공해 투약자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이런 수법에 넘어간 투약자 100명은 각각 최소 6회에서 많게는 887회까지 불법 투약을 받았다. 투약자 상당수(83%)는 20~30대로 조사됐는데, 이들 가운데 하루 최대 28회에 걸쳐 마약을 투약받거나 하루에만 1000만원을 결제한 투약자도 있었다. 1억원 이상의 금액을 지불한 투약자만 12명이었다. 전 프로야구 선수 오씨도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이 의원에 5차례 방문해 프로포폴 등을 투약받았다.

경찰은 이 의원에서 105명이 의료용 마약류를 투약받았으나 4명은 사망했다고 밝혔다. 1명은 같은 혐의로 이미 처벌받아 송치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2023년 9월 적발된 ‘람보르기니 남’ 홍모씨로 확인됐다.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 명의의 차명계좌로 범죄수익을 관리하는 등 범죄 은폐에도 적극적이었다. 탈세용 장부와 상담용 대포폰을 따로 만들었고, 진료기록도 허위로 작성했다.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불법으로 사용한 혐의도 함께 받는다.

마취제 에토미데이트.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효능이 유사하지만 마약류로 지정돼 있지 않아 남용되고 있는 약물이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해당 의원에서는 프로포폴·레미마졸람 등 마약류 외에 전신마취제 ‘에토미데이트’도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과 효능이 유사하지만 마약류로 지정돼 있지 않아 보고 의무가 없어 마약류 감시의 사각지대로 여겨져 왔다.

경찰 관계자는 “‘에토미데이트’가 마약류로 지정되기 전에 대량 불법 유통될 수 있어 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며 “의료용 마약류는 용법, 용량에 따라 사용해도 쉽게 중독될 수 있어 꼭 필요한 상황 외에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