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청담고 신축 현장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트럭 크레인을 동원해 “우리 조합원을 고용하라”는 집회를 하고 있다. 바로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지만 민노총은 지난달 20일부터 10m 높이 크레인에 스피커를 설치해 노래를 틀거나 고성을 질렀다. 주민들은 “환청이 들릴 정도”라며 경찰·구청 등에 소음 피해 민원 100건 이상을 제기했다./안태민 기자

지난 10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 단지. 근처에 주차된 차량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귀를 찌를 듯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지게차지회가 지난달 20일부터 2주가량(연휴·주말 제외)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집회를 열고 있는 현장이었다. ‘단결·투쟁’이라고 적힌 붉은색 머리띠를 맨 노조원 10여 명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깃발을 이곳에 꽂자” “투쟁으로 승리하자”고 외쳤다. 심지어 높이 10m의 크레인에 스피커를 설치해 공중으로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수백m 떨어진 지점까지 소음이 울려 퍼졌다.

민노총은 잠원동 청담고 신축 현장 근처에서 ‘불법 고용을 근절하라’는 취지로 집회를 진행 중이다. 당초 건설 현장에 민노총 소속 A 지게차 업체가 고용됐는데 민노총에 가맹하지 않은 다른 지게차 업체가 추가 고용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A 업체 소속 민노총 조합원들은 “시공사가 민노총 미가맹 업체를 추가 고용해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으려고 한다”며 “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공사가 고의로 민노총 가맹 업체를 배제했기에, 조합원 권익 보호를 위해 집회를 연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공사 측은 “민노총 미가맹 업체는 우리 회사가 아닌 하청 회사가 별도 계약을 맺었다”고 했다.

소음에 노출된 아파트 단지는 1572가구다. 2주 넘게 이어진 집회로 주민들은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주민 최민경(21)씨는 “매일 집회가 있어서 너무 시끄럽다. 처음에는 사이렌 소리까지 틀어서 죽을 지경이었다”고 했다. 주민 안모(65)씨는 “키우는 강아지가 집회 소음에 맞춰 매일 짖었다”고 했다. 인근 잠원초에 자녀가 다닌다는 주민 A씨는 “학교 수업에도 지장을 주는 집회가 계속됐다”고 했다. 2주 동안 경찰·구청 등에 100여 건 신고가 접수됐다. 이에 노사 협상이 진전, 지난 11일부터 집회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민노총은 2021년 양주시와 포천시 소재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민노총 조합원을 고용하라고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출동한 경찰을 폭행하고, 공사 현장에 화물차와 레미콘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게 진입로에 동전을 뿌렸다. 이들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각각 징역 1년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 인근 공사장에선 민노총이 “우리 조합원을 고용해달라”는 집회를 열었다. 새벽에도 소음이 70㏈을 넘어 주민들은 피해를 호소했다. 2022년에는 경기 안산시 한 아파트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민노총 조합원 8명이 조합원 고용 촉구를 이유로 집회를 열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들은 공사 현장에 무단 침입해 크레인을 점거한 혐의를 받았다. 2023년에도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주택가에서도 민노총 조합원 고용을 주장하는 집회가 열렸다. 주민들은 “조용했던 동네가 아침마다 난장판이 됐다”고 했다. 건설 현장의 이 같은 소란은 현 정부가 ‘건폭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잠시 주춤해지는 듯하다가 최근 서울 도심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현행 집회·시위법엔 주거 지역 내 집회 소음 규제 기준(오전 7시~일몰)이 60㏈(데시벨)로 규정돼 있다. 기준을 초과하면 경찰이 제재할 수 있다. 경찰이 10분간 측정 후 평균을 내는 식이다. 그래서 5분은 확성기로 강한 소음을 내고 나머지 5분은 내지 않는 식으로 경찰 제재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주거 지역 내 집회를 전면 금지하거나 확성기 사용 금지 등을 명시한 집회·시위 개정안이 국회에 수차례 발의됐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됐다. 정치권이 시민 단체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거 지역 집회 소음 기준을 독일처럼 40~50㏈로 낮춰 시민의 사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본지는 민노총에 집회 소음과 관련한 입장을 물었다. 민노총은 답변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