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100원 조금 넘는 돈이지만, 2400명이 매일 모으면 큰돈이 되더라고요. 화재로 모든 걸 잃은 시민들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어요.”

재난 현장에서 시민을 지켜온 소방대원들이 또 다른 기적을 만들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소방관들 얘기다. 소방관 2400명이 2019년부터 하루 119원씩 모은 돈이 5년 만에 12억3000만원을 넘었다. 그동안 모금액 중 4억2000만원으로 화재 피해를 본 집 등 96가구를 도왔다. 기부 캠페인의 이름은 ‘119원의 기적’. 참여하면 매달 3570원씩 월급에서 공제한다. 요즘은 지역의 기업이나 일반 시민도 동참해 기부자가 4500명으로 늘어났다.

인천소방본부 소방관들이 매일 119원씩 모은 기부금 500만원을 화재 피해를 입은 집에 전달하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처음 아이디어를 낸 건 인천소방본부 서영재 소방경이었다.”2017년 인천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나 가장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재빨리 불을 끄고 나머지 가족들의 목숨도 구했지만 무력감이 컸어요. 가장은 숨지고 집은 모두 불타서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됐죠. 우리도 박봉(薄俸)을 받는데 이런 피해자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계속 고민했습니다.”

인천소방본부 소방행정과에서 근무하게 된 2019년. 그는 매일 119원씩 모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뜻이 맞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시작했다. 서 소방경은 “적은 돈이라도 의미를 담으면 특별할 것 같아서 119원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인천소방본부는 서 소방경의 아이디어를 키워 본격적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화재 현장에서 통곡하며 주저앉는 시민들을 보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데 이렇게라도 돕고 싶어요.” “한 달에 3570원이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데 한번 참고 말죠.” 첫 달에만 이런 소방관 600명이 동참하겠다고 사인했다.

그래픽=김성규

인천소방본부는 2019년 11월 강화도의 발달장애인 재활 시설인 ‘강화도 우리마을’에 처음 기부금 1000만원을 전달했다. 당시 전기 누전으로 콩나물을 기르는 공장이 통째로 불탔다. 발달장애인 50여 명이 콩나물을 키워 겨우 먹고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 됐다. 소방관들이 매일 모은 기부금 1000만원은 공장을 다시 세우는 마중물이 됐다. 기부금이 릴레이하듯 이어지면서 전소된 공장은 1년 6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시설을 운영하는 대한성공회 측은 “불을 꺼주신 것만 해도 고마웠는데 기부금까지 주셔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발달장애인들은 2021년 8월 인천소방본부에 ‘소방대원님들 덕분에 멋지게 지어진 새 콩나물 공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쓴 감사 편지와 콩나물을 보내왔다. 다음 날 인천소방본부 구내식당에는 그 콩나물로 만든 콩나물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다. 당시 기부금을 전달했던 서영재 소방경은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소방관들이 동참했다고 한다.

소방관들은 2021년 4월 인천의 한 주택 화재 현장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온 가족이 잠자던 새벽, 갑자기 불이 났다. 엄마와 세 아이를 대피시키던 아빠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아빠는 다쳐 누웠는데 화재 피해는 7000만원이 넘었다. 인천소방본부는 이 집에 350만원을 전했다. 경력 17년 차 소방관 A씨는 “우리도 집에선 한 사람의 아빠”라며 “화상을 입은 아빠를 보며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기부금이 너무 적어서 안타까웠다”고 했다.

작년 10월 인천 남동구에선 비닐하우스에서 갑자기 불이 났다. 당시 비닐하우스에는 기초생활수급자인 70대 할아버지가 혼자 살고 있었다. 이 불로 할아버지는 집을 잃었다. 날씨가 쌀쌀한데 할아버지는 갈 곳이 없었다. 인천소방본부는 119원씩 모은 돈 500만원을 할아버지에게 전달했다. 그 돈으로 비닐하우스를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인천에서 시작된 119원의 기적 캠페인은 이후 경기, 충남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인천소방본부는 모금액이 불어난 만큼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은 화재 피해를 본 집에 기부금을 전하고 있는데 이재민 구호 등에도 쓰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