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김새론(25)씨 빈소엔 ‘그때 그 아이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다음 생에 또 만나자. 그때는 잔소리 줄일게’ 같은 문구가 적힌 화환이 놓여 있었다. 김씨는 전날 성동구 성수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홉 살에 영화 ‘여행자’(2009)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 진출한 최연소 대한민국 배우였고, 영화 ‘아저씨’(2010)로 628만 관객을 모았던 재능 있는 배우가 유명을 달리하자 사회 곳곳에선 애도와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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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022년 5월 강남구 신사동에서 음주 운전이 적발돼 이듬해 법원에서 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영화계 복귀를 시도했지만 여론은 따가웠다. 생활고를 겪어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 공개되자 일부 악플러는 “벌어 놓은 돈이 얼만데 생활고”냐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김씨는 배우 생활로 번 돈을 모두 가족에게 줬고, 원래 살던 아파트도 소속사를 통해 임차한 것이었다.

본지는 17일 고인이 숨진 채 발견된 성수동2가의 한 다세대주택을 찾았다. 골목은 차 한 대도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좁았고 곳곳에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김씨가 살았던 35년 된 주택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김씨가 생전 쓰던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여행 가방이 보였다. 허름하고 낡은 철문은 잠겨 있었다.

넷플릭스 ‘사냥개들’(2023)에서 주연 ‘차현주’ 역으로 재기를 시도하려는 김씨에게 여론은 냉담했다. “존재 자체가 민폐” “왜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고 하느냐”고 했다. 제작진은 촬영을 멈췄고 고인은 자진 하차했다. 이후 이 작품이 넷플릭스 비영어권 국가 주간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하자, “‘김새론 리스크’를 이겨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생전 김씨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럴 때마다 악플러들은 “‘SNS병 말기 환자” “정신 연령이 너무 낮은 듯” 같은 비난을 했다. 17일 빈소를 찾은 지인 차현중(25)씨는 “고인은 겉으로는 까칠해 보여도 속은 매우 긍정적인 친구였다”며 “평소 SNS에 사진 한 장 올려도 달리는 악플을 보며 속앓이를 많이 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았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떠났다”고 했다. 차씨는 고인과 1년여 전 한 카페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고인은 지난해 4월 연극으로 복귀를 시도했으나 여론 비난으로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저예산 영화 ‘기타맨’ 촬영을 완료했고, 이름도 김새론에서 ‘김아임’으로 개명하며 복귀를 타진했다. 지인들은 “개명한 뒤 연예계 생활과 카페 창업 등 여러 준비를 해왔고, 정신적·심리적 치료도 꾸준히 받았다”고 했다. 영화 ‘기타맨’은 오는 5월 개봉한다. 고인의 유작(遺作)이 됐다.

경찰 수사 결과 고인은 유서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심정지 상태인 고인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사건 당일 고인을 만나기로 했던 친구였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 등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단순 변사 사건으로 종결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나종호 미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수하거나 낙오된 사람을 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흡사 거대한 ‘오징어 게임’ 같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악플은 단순한 댓글이 아니라 ‘칼로 한 번씩 사람을 찌르는 행위’”라며 “이런 상황에 놓인 유명인은 어마어마한 무기력과 공포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김씨 팬들은 이날 추모 성명문에서 “김새론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며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가 감당해야 했던 비난과 외면은 인간적인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고 했다. 가수 미교는 “사람이 죽어야 악플러들 손이 멈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