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주년 재개봉 한 달 만에 관객 20만명을 넘어선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왼쪽). 20주년 재개봉으로 지난해 17만명을 모은 로맨스 고전 ‘노트북’(오른쪽). /조선일보DB

“신작이 있으면 2만원이라도 내고 영화관을 가겠지만 통 찾아볼 수가 없네요”

작년 한 해 동안 영화관에서 재개봉작만 9편을 봤다는 박재현(27)씨는 본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신작이 줄어든 탓에 평점을 비교하며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던 기억이 옛날 같다”고 했다.

신작(新作) 없이 재개봉하거나 이른바 ‘재재개봉’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늘고 있다. 극장보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집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경향이 지속되면서 극장에 공급되는 신작 편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서는 개봉작의 흥행 성적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여왔던 ‘박스오피스’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26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에서 재개봉한 영화는 총 228편(한국·외국영화 포함)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8년(78편)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코로나 유행으로 신작들의 개봉 시기가 미뤄져 재개봉 열풍이 불었던 2020년(264편), 2021년(203편)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재개봉 영화가 벌어들인 매출액도 2017년(약 77억)보다 3배 넘게 증가한 244억원을 기록했다. 반면에 지난해 극장 전체 개봉 편수는 2019년(1740편)보다 약 22% 줄어든 1344편에 그쳤다.

실제로 요즘 극장가에서는 재개봉 영화들이 잇따라 상영을 앞두고 있다. 2015년 개봉했던 음악영화 ‘위플래쉬’가 내달 12일 극장 개봉을 확정했고, 2월에만 ‘미드나잇 인 파리’ ‘원더’ ‘500일의 썸머’ 등이 극장에서 재개봉했다. 시장 규모가 줄어든 극장가에서 검증된 작품을 찾는 관객의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재개봉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 1~2월 독립·예술영화 흥행 상위 20편 가운데 6편이 재개봉작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들은 처음부터 신작이 아니라 재개봉작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기도 한다. 직장인 최모(26)씨는 “티켓값만 1만5000원인데, 신작에 이 금액을 선뜻 지불하기엔 리스크가 크다”며 “혹여나 영화가 별로면 돈을 낭비했다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어 “차라리 신작이 OTT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했다. 신모(25)씨는 “재개봉작 관람은 영화관이라는 특수한 시청각적 환경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감상한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신작 개봉 편수가 감소하며 극장을 찾은 전체 관람객 수는 크게 줄었다. 지난해 1~12월 국내 영화관의 누적 관객 수는 전년보다 201만명(1.6%) 줄어든 1억2313만명이다. 이는 2017~2019년 전체 관객 수 평균치인 2억2098만명의 55.7%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극장이 재개봉작에 의존할수록 OTT의 등장으로 낮아진 옛 위상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고정민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은 “극장이 신작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곳이란 수식어를 빼앗기면서 박스오피스란 개념까지 모호해졌다”며 “위기감을 느낀 극장이 생존 전략으로 재개봉작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작 없이 재개봉작에만 의존할수록 극장의 위상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며 “극장 환경에 적합한 신작들의 개봉 편수를 늘려 관객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