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는 프랑스 파리7대학 명예교수 등 허위 경력을 내세우며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천사상(像) 318점을 설치한 최바오로(71)씨 사건과 관련, 서울 성당·성지 내 최씨가 제작한 조각상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고 25일 밝혔다. 최씨의 조각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성당을 비롯해 경기 안성시 김대건 신부 묘소 등 한국 천주교 주요 성당과 성지 등에 설치돼 있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이날 “최씨의 사기 행각이 보도된 직후 서울 등 전국 각지 성당과 성지에 있는 최씨 조각에 대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며 “최씨의 조각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천주교계에선 ‘사기꾼의 조각이 거룩한 성당에 있어도 되는 것이냐’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1983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도의 만찬’ 부조는 현재 대치동성당 1층 로비에 있다. 가로 5m·높이 3m의 대형 부조로, 과거 미사가 집전되는 제대(祭臺)에 설치됐다가 1991년 대치동성당 증축 때 1층 로비로 옮겨졌다. 현재 이 부조 앞은 신자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체포되기 전 열두 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성당 신자들은 최씨가 전과 6범의 사기 전과자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거짓말을 금기(禁忌)로 삼는 천주교 성당에 사기꾼의 조각이 있다면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목4동성당에는 최씨가 2017년 조각한 ‘십자가의 길’ 14처(處)가 있다. 두께 20㎝·폭 4.5m에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무덤에 묻히는 수난 과정을 담은 작품으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씨는 700살이 넘은 나무를 깎아 2년여에 걸쳐 조각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2009년 서울 양천구 목3동성당 외벽에 성십자상과 12제자상을 설치했다. 설치 당시 수명이 긴 아카시아 나무를 조각에 사용하고, 방염 처리를 해 혹시 모를 화재에 대비했다고 했으나 3년 만인 2012년 나무가 괴사하면서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최씨의 진실이 알려지면서 성직자들 사이에서 전수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불거졌다”며 “교계 각지에 최씨의 조각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한 신자는 “한국 천주교가 사기꾼에게 농락을 당했다”며 “다니는 성당 주임 신부에게 ‘최씨의 작품이 있느냐’고 문의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자신이 6·25전쟁 때 태어난 ‘혼혈 고아’라고 주장하며 여섯 살 때 이탈리아의 미술가 집안으로 입양됐다고 내세웠다. 유년기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성당인 라테라노 대성전(324년 완공)의 12사도상을 보며 조각가의 꿈을 키웠고, 이어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에서 조각을 공부했다고 했다. 이후 자신을 파리7대학 명예교수를 지낸 ‘세계적인 성상(聖像) 조각가’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주요 성당과 성지에 조각을 설치해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최씨의 주장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