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찾은 경기 포천시 가산면의 한 중고 주방 가구 창고. 창고 앞 주차장엔 오븐·싱크대·튀김기 등 폐업한 식당에서 수거한 가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132㎡·198㎡(40평·60평) 면적의 창고는 이미 포화 상태.
1t 트럭 2대가 입구에 들어서자 관리인인 안태복(62)씨가 난색을 표했다. 창고 공간이 없어 하나둘 주차장까지 내놓았지만, 이제 창고 입구까지 막을 지경이다. 안씨는 “불황 속 호황이라는 말도 옛말”이라며 “폐업하는 가게만 계속 늘어나서 가구는 쌓여가고 매출이 반 토막 났다”고 했다. 인근의 다른 가게 앞 창고 앞에도 가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高) 현상에 폐업 정리 업체에 재고만 쌓이고 있다. 이런 업체들은 폐업한 자영업자의 가게 철거를 도와주는 대신 가구들을 한꺼번에 사서 내다 팔며 돈을 번다.
자영업자 폐업률이 급증하니 폐업 정리 업체에는 철거 문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중고 가구들은 팔려 나가지 않아 창고가 포화 상태라는 것이다. 하루에만 5~6건 폐업 정리 요청이 들어온다는 한 업체의 철거 과정을 따라가 봤다.
◇폐업한 햄버거집, 조리대 위엔 대부업 광고지 수북
‘사업자 대출’ ‘일수&월변’ ‘타사 거래자 환영’
지난 6일 찾은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폐업한 프랜차이즈 햄버거집 조리대 위에는 대부업 전단지가 쌓여 있었다. 작업반장인 김성만(73)씨가 가게 내부의 대형 냉장고, 바비큐 그릴, 싱크대, 식기 세척기, 튀김기 등 가구에 달린 전기선을 빼냈다. 큼직한 대형 가구들을 홀로 빼뒀다. 냉장고 안에는 양상추·피클이 남아있었다. 3일 전에 폐업한 가게였다.
대형 가구를 빼낸 뒤 직원들은 홀을 정리했다. 메뉴판 및 장식품 등을 포대에 한데 모아두고, 물건들은 200L짜리 쓰레기 봉투에 넣었다. 홀 구석에 점주가 일할 때 신은 것으로 보이는 작업화가 보이자 한 직원이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뛰어다닌다고만 해서 다 잘되는 게 아니네요.”
5시간가량 철거 작업을 마치고 주방 가구들을 트럭에 실었다. 새 주인을 찾은 유일한 가구인 대형 오븐은 경기 시흥의 한 식당으로 배달한다. 나머지 주인을 찾지 못한 주방 가구는 1t 트럭 2대에 나눠서 실렸다. 김씨는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2021년 이후로 이만큼 철거 및 수거 요청이 많이 들어온 시기가 없다”며 “‘어제 차린 가게가 내일 보면 망해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라고 했다.
자영업의 현실은 대출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64조 4000억원으로 관련 통계 집계(2012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영업자의 연체액도 같은 시기 총 18조 1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2조 2000억원 늘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불황 때 돈 번다?” 폐업 정리 업체도 고사 직전
경기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중고품이 쏟아지자 폐업 정리 업체는 고사 직전이라고 한다. 경기 양주시의 한 중고 주방용품 업체 대표 김대형(50)씨는 “작년 12월 이후 폐가구 매입을 완전히 중단했다”며 “예전에는 한 달이면 창고 재고가 다 회전됐는데, 요즘은 3개월이 지나도 그대로”라고 했다.
재고가 늘면서 업계 전체적으로 판매 가격도 내림세다. 경기 수원의 한 중고 가전 매매 업체 운영자 이모(45)씨도 “요즘은 폐업 가구를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수출하지 않으면 처리할 방법이 없다”며 “해외에 헐값에라도 넘겨야 철물점에 넘기는 것보단 낫다”고 했다. 원래 150만~180만원에 팔리던 폐가구도 30만원 수준에 처분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자영업자 대출·폐업 역대 최대… 번화가도 예외 없다
번화가도 예외는 아니다. 이튿날인 7일 이 업체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레 식당을 철거했다. 개업 1년 만에 폐업했다고 한다. 음료 냉장고, 식탁, 의자 등 대부분의 가구가 흠집 등이 없이 깨끗했다. 직원들은 “이 정도면 거의 새 물건인데, 살 때는 억 단위로 샀을 텐데”라며 혀를 끌끌 찼다.
사장과 직원들이 붙여둔 스티커가 가게 곳곳에 보였다. 포스기에는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물함에는 손글씨로 ‘사장놈’ ‘김닝겐’ ‘박노예’ ‘이노예’ 등 직원들 별명으로 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한 직원은 “이곳도 나름 장사 잘됐을 텐데, 사장이랑 직원들이랑 친했던 것 같은데, 결국 폐업했네요”라고 했다.
가게 주인 오모(31)씨는 “6개월까지는 수익이 유지되는 것 같았지만, 이후 점점 매출이 떨어졌다”며 “유동 인구 감소, 경기 침체가 겹쳐 점심 장사로는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임차료 세 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고 폐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영업자 폐업률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작년 12월 발표한 ‘최근 폐업 사업자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2023년 폐업한 사업자는 98만 6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6년 이후로 최다로 나타났다. 특히 ‘사업 부진’을 이유로 폐업한 업자가 전체 절반(48.9%)이었다. 경총 관계자는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경영난을 버티지 못해 폐업이 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