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대 입구. 외국인 관광객과 대학생들로 북적이는 가게들 사이에 허름한 2층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출입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하얀색 외벽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이 건물은 원래 서울 마포경찰서 서교치안센터가 있던 곳이다. 문 닫은 지 1년이 됐지만 흉물처럼 서 있다. 이 치안센터는 올 하반기 홍대 일대 공방들이 들어와 향초나 열쇠고리, 액세서리 등을 파는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로 변신한다. 앞마당에 잔디를 깔아 매장을 열 수 있게 하고 안에는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스터디 카페를 만든다.
서울시는 최근 이처럼 방치돼 있는 치안센터를 팝업 스토어, 스터디 카페, 갤러리 등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서울에 사실상 ‘폐가’가 된 치안센터는 총 109곳. 이 중 20곳이 서울시 소유인데, 이를 리모델링해 팝업 스토어나 카페, 주민 소통 공간 등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경찰청은 2023년부터 전국 치안센터를 통폐합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치안센터는 건물은 낡았지만 지하철역이나 도로와 가깝고 순찰차 주차 공간도 있어 마당이 널찍한 편”이라며 “건물 구조도 엇비슷해 리모델링만 하면 빠르게 명소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올해는 우선 서교치안센터를 포함해 3곳이 새 옷을 입는다. 각 동네의 특성을 한껏 활용하는 데 중점을 뒀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도곡치안센터는 ‘러닝 마켓’으로 탈바꿈한다. 인근 양재천을 찾는 2030 ‘러닝 크루(달리기 동호회)’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구상이다. 운동화나 러닝복, 물병 등을 파는 상점을 열고, 스포츠 용품 회사나 운동 인플루언서들이 행사를 열 수 있도록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천구 시흥동의 시흥5치안센터는 ‘주민 사랑방’이 된다. 빌라나 다세대 주택이 많은 동네 특성을 반영해 주민들이 차도 마시고 추위나 더위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성한다는 아이디어다.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 같은 노인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열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구나 서초구의 치안센터는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하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갤러리’로 꾸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요코하마에도 폐가가 된 파출소를 동네 카페로 바꾼 사례가 있다.
서울시는 올 7월부터 예산 2억5000만원을 들여 치안센터 개조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운영은 민간에 맡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이 운영하면 최신 유행을 빠르게 반영하기 어렵고 예산 부담도 크다”며 “감각 있는 민간 업체들과 협력해 살아 숨 쉬는 ‘일상 속 명소’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규모 개발로 새로운 문화 시설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곳곳에 숨어 있는 장소를 발굴해 바꿔나가는 게 효율적”이라며 “시민들이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발굴하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