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이란 ‘신경이 긁혔냐?’라는 뜻으로 MZ세대가 상대방을 약 올리거나 도발할 때 쓰는 신조어입니다. 연재 ‘긁?’은 약자들의 가려운 곳과 민생에 무관심한 권력자들의 신경을 긁어보겠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긁어보겠습니다.]
지난달 25일 광주광역시의 한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던 4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지 이틀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A씨의 죽음은 가족 등 주변과 관계가 단절된 채 세상을 떠난 전형적인 고독사였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다음 날 그가 거주했던 B 고시원을 찾아갔다. 고시원은 과거 고시 준비생들이 주로 이용했지만 B 고시원처럼 오래된 곳은 어느새 저임금·일용직 노동자 등 도시 빈곤층의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지인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A씨에겐 어머니와 형제, 두 자녀 등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에 실패한 후 이혼을 했고, 가족과의 관계도 끊어졌다고 한다. A씨는 사망 당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A씨의 사망 원인은 평소 앓던 지병으로 추정된다.
고시원 주변 수퍼마켓 주인 C씨는 “한 번도 A씨가 누군가와 함께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마 나하고만 대화를 하고 지낸 것 같다”며 “자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건강이 안 좋은데 술을 많이 마셔서 내가 잔소리를 자주 했다”고 했다.
C씨는 “혼자 살던 A씨는 일을 하고 싶어도 건강이 나빠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병원에 갈 때만 고시원 주변을 벗어났던 것 같다. 최근에는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됐다. 가게에서 갑자기 주저앉아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고독사의 경우 가족이 시신 인도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A씨의 가족은 그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A씨는 세상을 떠난 후에야 가족과 재회했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독사 사망자는 2021년 3378명, 2022년 3559명, 2023년 3661명으로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 “흔해진 1인 가구, 고독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1인 가구를 위한 국내 최초의 시민단체인 ‘한국1인가구연합’의 대표를 맡았던 송영신 변호사(현 보건복지부 고독사예방협의회 위원)는 “고독사는 1인 가구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평범한 가정이 있는 사람도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부부 중 1명이 먼저 사망하면 1인 가구가 된다. 이혼 등으로 비자발적 1인 가구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12년 강원도 강릉에서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고독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송 변호사는 “당시 강릉 아파트에서 외증조 할머니와 미혼모 손녀가 낳은 10개월 된 증손자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며 “수사해보니 할머니가 화장실을 가다 건강 악화로 쓰러졌고, 아이는 돌보는 사람이 없어 방치돼 사망(아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고독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인 가구는 782만9000가구로 전체 가구 중 35.5%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았다. 약 30년 뒤인 2052년엔 10가구 중 4가구가 1인 가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송 변호사는 “최근 중장년 남성의 고독사도 크게 늘고 있다. 회사에서 퇴직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거나 가족과 단절되는 사례가 많다”며 “아직까진 고독사 대응은 거의 노인과 청년층 위주로 진행되고 있어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했다.
국내에선 2020년에 ‘고독사 예방법’이 제정됐다. 고독사 위험이 있는 경우 국가 및 지자체가 나서서 이를 막아야 한다는 의무를 규정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 주민센터 고독사 담당 공무원 D씨는 “고독사 관련 정책이 지자체별로 이뤄지다 보니 거주 지역에 따라 지원 여부가 크게 다르다”며 “지자체별로 중첩되는 사업도 많아 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D씨는 “사회적 고립 가구를 상시 돌보는 ‘우리 동네 돌봄단’은 좋은 제도지만 담당자가 너무 자주 바뀐다”며 “대부분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하고 마음을 열지 않다가 1~2년간 꾸준히 찾아야 겨우 마음을 여는 분들인데 이런 부분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일본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셰어하우스나 공공 후견인 제도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면서도 “막상 시도해 보니 국내 사정과 맞지 않아 도입되지 못한 것들이 많다. 고독사 방지와 관련해 많은 연구와 정책 개발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 “고립된 청년은 경계심 더 많아... 취업·정서적 지원 필요"
청년 고독사로 이어질 수 있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하면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고, 궁지에 몰린 청년들이 각종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태 조사에 따르면, 타인과의 유의미한 교류가 없는 사회적 고립 상태의 청년 인구는 약 54만명으로 추정됐다.
2018년부터 특수 청소 전문 회사인 ㈜버틀러를 운영해온 이준희 대표는 “청년 고독사 현장은 왠지 마음이 더 아프다”며 “청년 고독사 현장에서는 죽은 반려동물이 많이 발견된다. 외로우니 반려견 등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주인이 죽은 후 밥을 먹지 못해 아사한 상태로 발견되는 것”이라고 했다.
청년들은 취업 등 경제적 문제를 겪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 고독사 현장에서는 이력서 뭉치 등 마지막까지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자주 발견된다. 지난 2021년 대선을 앞두고는 한 청년의 고독사 사연이 정치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당시 31세의 청년은 6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오피스텔에서 150여 장의 이력서가 발견돼 사연을 접한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30대 고독사 사망자는 2019년 218명, 2020년 206명, 2021년 217명, 2022년 205명, 2023년 208명 등으로 매년 꾸준히 200명대로 집계되고 있다. 청년 고독사 사례가 줄지 않고 있지만 노년층보다 청년층 위험군을 관리하는 일은 더 어렵다.
고독사 담당 공무원 D씨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청년들의 경우 경계심이 많다. 막상 자신이 고독사 위험군이란 소리를 들으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라며 “청년 사업을 안내하겠다는 등의 명분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마음을 열게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송영신 변호사는 “주기적 안부 확인 등 고독사를 빨리 발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심리 치료 지원, 정서적 지원, 취업 지원 등으로 청년들을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했다.
◇ “정치인들이 고독사 현장 직접 보면 심각성 절감할 것”
이준희 대표는 고독사 현장을 자주 접하며 의외로 평범한 직장인도 고독사를 당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조선닷컴과 인터뷰에서 “퇴직한 세무 공무원도 있었고, 간호사, 회사원 등 직업도 다양했다”며 “사회적으로 낙오된 사람만 고독사를 당한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했다.
고독사 현장에 특수 청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름에는 부패가 일찍 진행돼 사망 후 일주일 정도면 주변 이웃들의 신고로 고인이 발견되는데 겨울에는 고인이 사망한 후 2~3개월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며 “시체가 부패하면서 발생한 악취가 벽지에 배고, 체액이 장판 아래로 스며드는 경우도 꽤 있어 청소가 까다롭고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누군가는 망자를 외롭지 않게 좋은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고독사 관련 일을 맡기 시작했는데 지자체와 유족 중 대금 지불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은 안부를 챙겨줄 지인이 없어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는 “수사 기관은 아니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현장에선 고인이 오랜 기간 몸부림친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며 “아마 쓰러진 후 의식은 있지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간 것 아닌가 추측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고독사 현장에서 나는 냄새는 썩은 음식물이나 쓰레기 냄새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처음 냄새를 맡는 사람은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을 정도”라며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분들이 고독사 현장을 직접 한번 봐야 한다. 실제로 한번 보고 나면 고독사 문제를 절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