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제 김연아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 부부(사진 왼쪽)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의 결혼이 작년 전체 초혼의 19.9%로 역대 최고 비율을 기록했다. 배우 공효진과 가수 케빈 오 부부(오른쪽)처럼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초혼 부부도 405쌍에 달했다. /김연아, 케빈 오 인스타그램

작년 결혼한 남녀 5쌍 중 1쌍은 피겨 여제 김연아(35)와 팝페라 가수 고우림(30) 부부 같은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 커플인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혼인 신고를 한 초혼(初婚) 부부는 17만8734쌍으로, 이 가운데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경우는 19.9%인 3만5616쌍이었다. 관련 통계가 처음 나온 1990년대엔 이 비율이 8.8%에 그쳤는데 점차 올라 2023년 19.4%까지 올랐고 작년에 역대 최고치를 고쳐 쓴 것이다. 동갑내기 부부 비율도 16.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래픽=양인성

반면 연상남·연하녀 부부 비율은 63.4%로 역대 최저다. 배우자의 나이보다 능력과 외모 등 다른 조건을 중시하는 20·30대 남녀가 늘면서 ‘연상 신랑+연하 신부’라는 오랜 통념이 깨진 결과라는 진단이 나온다. 결혼 정보 업체 듀오 관계자는 “전문직 등 능력 있는 30대 초·중반 여성을 중심으로 예비 신랑의 나이보다 외모 등 다른 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남성들도 여성의 경제력을 따지는 경우가 늘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자주 맺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내가 10살 이상 많은 초혼 커플도 작년 405쌍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의 길로 접어들던 과거와 달리 맞벌이 부부 형태로 가정과 사회생활을 병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경제력은 결혼 상대를 찾을 때 중시하는 핵심 조건으로 떠올랐다. 30~34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0년만 해도 48.9%로 절반을 밑돌았는데, 작년 기준 비율은 75.7%로 높아졌다. 30대 초반 여성 4명 중 3명은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뜻이다.

◇아내는 차장님, 남편은 과장

남자는 생계를 책임지는 바깥사람, 아내는 살림을 주로 맡는 안사람이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2023년 기준 결혼 5년 이내 신혼부부 76만9067쌍 가운데 5.7%인 4만4182쌍은 아내만 일을 하고 남편은 살림 등을 하거나 쉬는 경우였다. 같은 직장 여성 상사와 결혼하는 남성들도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과장(43)은 입사 1년 선배인 여성 차장과 결혼했다. 차장인 아내에게 회사에선 “차장님”이라고 부르고, 집에선 ‘ΟΟ씨’라고 한다. 정부세종청사와 정부서울청사 등 관가에서도 여성 선배 공무원이 남성 후배와 ‘썸’을 타다 백년가약을 맺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가연 관계자는 “외모와 건강을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이 늘면서 30대 초·중반 여성의 외모가 과거보다 대체로 젊어지고 있다는 점도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어나는 요인”이라고 했다.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늘면서 초혼 부부의 남녀 나이 차이도 줄어드는 추세다. 작년 초혼 남성의 평균 연령은 33.86세로 여성(31.55세)보다 2.31세 많다. 1990년만 해도 이 차이가 3.01세에 달했다.

의료 기술 발달로 30대 중·후반 여성의 출산이 늘어난 것도 연상녀·연하남 부부가 증가하는 이유로 꼽힌다. 35~39세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2023년 43명으로 30년 전(13.5명)의 3.2배가 됐다.

◇10살 이상 연상녀 커플 405쌍

남녀 모두 재혼(再婚)인 결혼은 작년 2만3022건으로 이 가운데 20.6%가 연상녀·연하남이 가정을 꾸린 경우다. 신부 나이가 신랑보다 많은 재혼 비율은 이미 2014년 20%를 넘었다. 배우 공효진(45)과 가수 케빈오(35)처럼 아내가 남편보다 열 살 이상 많은 경우도 초혼 기준 405쌍, 재혼은 231쌍에 달했다.

연상녀·연하남 부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있다. 20년 전 세 살 연상 아내와 결혼한 신모(45)씨는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지인들이 아내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부르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편하게 ‘제수씨’나 ‘누님’이라고 한다”고 했다. 듀오 관계자는 “연하남과 결혼한 여성들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 부각되는 ‘누나’라는 호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성사된 커플의 호칭은 ‘자기’ ‘여보’ ‘ΟΟ씨’ 등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초혼과 재혼을 포함한 지난해 혼인 건수는 22만2412건으로 전년 대비 14.8% 증가했다. 증가율은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다. 2차 베이비 붐 세대(1964~1974년생)의 자녀인 ‘2차 에코 붐 세대’인 1990년대 초반생들(1991~1995년 출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적령기(여성의 첫아이 출산 연령은 평균 33세)를 맞은 영향이 컸다.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거리 두기 규제로 결혼을 미루다 2년 전쯤 뒤늦게 부부가 된 ‘엔데믹(풍토병화) 커플’이 아이를 낳기 시작한 점도 한몫했다. 박현정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30대 초반 인구가 증가한 것과 코로나19로 혼인이 감소했던 기저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혼인이 큰 폭으로 늘었다”며 “혼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 확대, 혼인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 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