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충무로역 인근에 붙어 있는 카드 대출 광고물./뉴시스

충남 천안에 사는 김모(25)씨는 자취방 보증금이 부족해 지난달 불법 사채 20만원을 썼다. 일주일 만에 40만원을 갚는 조건으로 연이율 수백%대였다. 그런데 변제 기일 내 갚지 못하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김씨는 매일 사채업자에게 욕설이 담긴 빚 독촉 문자 수십 통을 받았다. 협박에 시달린 김씨는 결국 사채로 갚는 돌려막기를 했고, 한 달 만에 상환해야 할 돈이 400만원이 넘게 됐다. 그는 “하루빨리 입금하지 않으면 딥페이크로 얼굴을 야동에 합성해 뿌리겠다고 협박이 온다”며 “업자들이 집 주소도 알고 있어 찾아올까 무섭고 죽고 싶다”고 했다.

20일 본지가 입수한 경찰청 ‘대부업법 위반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작년 적발한 불법 사금융이 1582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적발 건수다. 불법 사금융 건수는 2015년 900건에서 2019년 1479건으로 늘다가 코로나 이후 2021년 675건까지 감소 추세였다. 이후 2022년(914건), 2023년(977건) 조금씩 늘더니 전년 대비 약 1.6배 폭증한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불법 사금융 피해자 연령대를 보면, 지난해 20대 피해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작년 20대 피해자는 309명이었다. 2022년(144명), 2023년(154명)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2015~2023년 내내 줄곧 30대·40대가 차지했던 피해 연령 1·2위는 지난해 30대(312명), 20대(309명)로 바뀌었다. 뒤이어 40대(254명), 50대(145명), 60대 이상(60명) 순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사금융의 경우 피해자가 본인의 신상 등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아 실제 피해 건수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경기 악화로 돈을 빌리고자 하는 신용도가 낮은 청년층은 계속 늘어나는데,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은 줄면서 불법 사금융 업체들이 이 틈새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법은 연이율 20%가 넘는 고리대금을 금지(이자제한법)하고 있고, 채무자·주변인 협박 같은 불법 빚 독촉도 처벌(채권추심법)한다. 하지만 불법 사채업체들은 단속을 피해 영업 중이다.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실에 제출한 ‘연도별 불법 사금융 신고·상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신고 건수는 1만5397건으로 전년 1만3751건과 비교해 11.9%(1646건) 늘었다.

경남 양산 출신 A(27)씨는 작년 3월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수습 급여만으로는 월세 등 생활비가 부족해 사채를 썼다. 은행에서 대출받고 싶었지만, 회사에 재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30만원으로 시작한 빚은 점점 불어 그해 11월쯤 1700만원이 됐다. 대부업체는 그때부터 한 달간 A씨 직장, 아버지, 아버지 직장에까지 전화를 걸어 “돈을 대신 갚으라”며 협박 전화를 돌렸다. A씨는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며 “당시에는 그냥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다”고 했다.

정부는 불법 사채 특별 단속을 2022년부터 해오고 있지만, 폭력이나 협박을 동원한 불법 사금융은 근절되지 않는 상황이다. 2023년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범정부 차원의 ‘불법 사금융 척결 TF’가 출범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저소득·저신용 취약 계층의 자금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이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빠지게 됐다”며 “이들이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있도록 불법 사금융에 대한 엄격한 단속과 규제가 더 가해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