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는 부장검사 출신 김우석 변호사가 핫이슈 사건을 법률적으로 풀어주고, 이와 관련된 수사와 재판 실무를 알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2023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공용아파트 현관문에 전세사기 피해 수사 대상 주택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스1

지난 20일 전직 고위 공무원이었던 부동산 임대업자 A(76)씨가 전세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A씨는 부산시 지자체 부구청장,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 이사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퇴직 후 2019년 9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무자본 갭투자로 부산 시내 다세대 주택 9채를 사들여 73개 호실의 세입자들에게 전세 보증금 총 62억원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주로 20~30대 여성이었다.

A씨는 “보유한 건물이 많다”며 재력을 과시하고, 고위 공무원 이력을 내세워 세입자들을 안심시켰다. 이런 사람들도 전세 사기를 치는 세상이다. 내 전세금은 안전할까?

◇“돈 없다”며 전세금 못 준다는 집주인, 사기가 아니라고?

Q. 계약 만료일이 다가왔는데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도 않고, 돈도 없다”며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거 사기 아닌가요?

A. 전세 사기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전세금 반환 ‘지연’에 불과하다면, 전세 사기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전세금 반환이라는 ‘민사 채무’의 이행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상 사기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법체계상, 채무불이행 그 자체만으로는 범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단순한 전세금 반환 지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세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거라면, 전세 사기가 성립합니다.

만약 집주인이 전세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세입자는 절대로 전세계약을 체결하거나 전세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몰랐고, 그 이유가 집주인이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그건 세입자를 속인 것이 됩니다.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것이 되는 거죠.

전세사기 피해자가 적은 폭발물 설치 관련 문구. /뉴시스

◇“전세 시장이 어려워진 걸 어떡해” 집주인의 변명, 이러면 사기다!

Q. 어떤 경우에 ‘처음부터 전세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보는 건가요?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A. 사기성이 명확한 사례부터 살펴보죠. 가령 실거래가가 5억원인 집을 6억원에 매수한 것처럼 가장하고, 5억5000만원에 전세를 주었다고 합시다. 이러면 전세금을 받아서 집값을 지급하고도 5000만원이 남는데, 고스란히 전세 사기꾼의 범죄 수익이 됩니다.

하지만 집값이 전세금보다 낮으니,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습니다. 속칭 ‘깡통 주택’이 되는 거죠. 이를 위해 깡통 주택의 ‘바지 집주인’이 되어줄 신용 불량자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공인중개사까지 공범으로 가담하기도 합니다. 진짜 집주인, 신용 불량자, 공인중개사 등이 서로 짜고 세입자 한 사람을 속이는 겁니다.

Q. 그러면 A씨의 경우, 전세대출 규제가 심화되어 전세 수요가 급감했고, 세입자 모집이 어려워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처음부터 전세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전세 사기 혐의로 구속된 이유는 뭔가요?

A.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한 투자를 하다가 전세 사기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자기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출금이나 갭투자’로 주택을 여러 채 구입해 전세를 놓는 경우에 전세 사기가 되기도 합니다. A씨도 이런 사례일 것입니다.

예컨대 집값‧전세가 하락 또는 전세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구하더라도 전세금을 기존보다 낮추게 될 것입니다. 이러면 집주인은 자기 돈으로, 또는 빚을 얻어서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주택을 여러 채 구입했다면 돌려줄 전세금은 그만큼 더 늘어날 것입니다.

A씨처럼 73개 호실의 전세금을 돌려주어야 한다면 엄청난 부담이겠지요. A씨는 자기 자본이 없었으니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렵다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후속 전세 계약을 연달아 체결하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결국에는 ‘돌려막기’ 식으로 전세금을 상환해 오다가 마침내 이것도 불가능해지는 시기가 옵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폭탄이 터지는 거죠. 이때 전세 사기 피해가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A씨는 비교적 최근에 체결한 전세계약의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했을 것이고, 이 부분이 전세 사기 혐의의 근거가 됐을 겁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인천미추홀구 전세사기 일당의 대법원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대규모 전세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일명 '건축왕' 남모씨의 상고심 선고기일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뉴스1

◇전세 세입자 위한 ‘안전장치’는 이것

Q. 결국 사기 여부를 가르는 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세입자를 받았나’인 것 같은데요. 전세 세입자 입장에서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는 뭐가 있을까요?

A. 아쉽게도 ‘도깨비 방망이’ 같은 수준의 안전장치는 없습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 사기를 눈치채기도 어렵고, 입증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을 믿고 기다리다 못해 고소하면 수사기관이 집주인을 조사하게 되면서 전세 사기임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일반전세지킴보증’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하시기를 권합니다. 전세금 규모가 일정액 이하인 경우, 전세금을 반환받지 못하면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임대인 대신 이를 반환해주는 제도인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기 피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집주인이 처벌받는 것보다는 자신의 피해 금액을 돌려받는 것이니까요.

또한 전세 사기 피해를 막으려면, 우선 주택을 인도받고 전입신고를 하면서 전세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아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택 등기부등본을 확인하셔서 근저당 등 세입자보다 선순위인 담보 채권이 얼마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집을 팔아서라도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을 남겨둘 수 있습니다. 전세 주택의 실거래가가 얼마인지, 전세 시세는 얼마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다니면서 발품을 팔아 꼼꼼이 알아보셔야 합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 4명 중 3명은 20~30대라고 합니다. 사회 경험이 적으니 위와 같은 요령을 몰라서 피해를 입는 것이겠지요. 매우 안타깝습니다.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날리지 않기 위해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 /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