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산불을 진화하다 희생된 창녕군청 소속 공무원 강모(33)씨는 2021년 10월 창녕군의 산림 자원을 관리하는 녹지직으로 입직했다. 유족들은 “하얗게 연기가 올라오는데 그 불길에다 애를 밀어넣는 놈들이 어디 있냐”고 통곡했다. 부모는 “우리 아들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며 주저앉았다. 강씨는 최근 경남도청 전입 시험을 치르고 28일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강씨의 큰어머니 심갑분(68)씨는 지난 설날 만난 것이 강씨와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했다. 강씨는 그날 심씨에게 “늘 감사하다”며 주머니에 용돈 10만원을 슬그머니 넣어줬다고 한다. 심씨는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우리 애가 얼마나 순한데”라며 “바람만 약하게 불었어도”라고 했다.

또 다른 유족은 “사람이 4명이나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씨는 다른 직원과 당직 근무를 바꿨다가 참변을 당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강씨 조카의 100일이기도 했다. 이날 점심 강씨 가족들은 다 같이 모여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강씨의 큰아버지인 강인수(72)씨는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가족들끼리 하하 호호 웃었는데...”라고 했다.

진화 대원 공모(60)씨는 10년간 여러 산불 진화 작전에 투입된 베테랑 진화 대원이었다. 92세 병든 홀아버지를 여동생과 수발하기 위해 진화대 일을 택했다. 공씨의 여동생은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던 효자 중 효자였다”며 “사고 전날도 잘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아버지 잘 모시고 있으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가 돼버렸다”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공씨는 사고 당일 아침에도 이웃의 마늘밭에 물을 대줬다고 한다. 공씨가 살던 여초리의 이장 B씨는 “우리 마을에서 제일 근면성실한 사람이 공씨였다”고 했다. B씨는 공씨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던 이웃이다. B씨는 “우리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눈앞이 캄캄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진화조장이던 이모(64)씨도 창녕군 한 마을에서 홀어머니를 모셨다. 이씨는 이 마을의 ‘공짜 택시 기사’로 불렸다. 어머니는 물론 동네 어르신들이 차가 없어 읍내나 병원을 못 가면 앞장서서 어르신들을 태우고 다녔다. 그의 후배 하종극(63)씨는 “우리 동네 궂은일은 우리 형님이 다 하셨다”며 “우리 동네 큰 일꾼이 이렇게 덧없이 가버렸다”며 멍하니 영정을 바라봤다.

또 다른 진화 대원 황모(63)씨의 아내 김모(52)씨는 “그 마지막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