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희(가명·74) 할머니가 폐지를 줍고 있다. /이랜드복지재단

찬바람이 거센 2월 새벽, 정덕희(가명‧74)씨는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시간부터 폐지를 줍기 위해 움직였다. 경기도의 한 좁은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정씨는 폐지 줍기로 하루 7000~1만원가량을 벌고 있다.

24일 이랜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SOS위고 봉사단에 따르면 중국 동포인 정씨는 10년 전 한국에 정착한 후 간병인으로 일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2023년 초 자궁암 수술을 받은 후에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정씨는 자궁암 수술 후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하지만 폐지를 줍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다. 한 건물 밖에 놓여진 물건을 고물로 착각해서 가져갔는데 물건 주인이 도둑으로 생각해 정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씨는 2023년 9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이는 귀화 결격 사유가 됐다. 정씨는 “정말 억울했다”며 “귀화해 평생 한국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정씨에겐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정씨는 “어린 시절 입양한 딸이 있었다. 지난해 초, 믿었던 딸이 전 재산을 들고 달아났다”며 “딸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정씨는 “한국으로 귀화해서 제대로 정착하고, 아플 때를 대비해서 그동안 모아둔 돈이었다”고 했다. 재외동포가 한국으로 귀화하려면 6000만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했다는 증명이 필요한데 그 돈까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씨는 사연을 접한 SOS위고 봉사단으로부터 작년 봄 월세 및 생활비 180만원 지원을 받았다. 또한 작년 11월부터는 지역 교회를 소개받아 계단 청소 일을 하며 정기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정씨는 “비록 작은 일이지만, 매일 일정한 수입이 생기고 교회 분들과 어울리다 보니 다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며 “이제는 제가 받은 도움을 다시 베풀고 싶다. 누군가를 돕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