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영외고 앞 도로에서 발생한 싱크홀(땅꺼짐)로 참변을 당한 오토바이 운전자 박모(34)씨는 배달 일을 위해 쓴 헬멧에 눌려 머리카락이 빠진 만큼 열심히 산 청년이었다.
25일 오후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박씨의 빈소를 찾은 이미정(62)씨는 “너무 일찍 철이 든 효자였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이씨는 고인의 어머니와 40년 지기 친구다.
“몇 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 가장이 됐어요.” 이씨는 고인을 생각하며 이같이 말했다. 20대 시절 아버지를 잃고 갑작스레 집안 가장이 됐다. 사업을 크게 하셨던 아버지가 건강이 악화되면서 고인은 사업 인수인계를 받았다. 그런데 인수인계 한 달 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곱게 자란 예쁜 아이가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너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물려받은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빚이 생기자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사업 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에는 오토바이 배달을 하며 가정의 생계를 이어 나간 것이다. 고인은 소문난 효자이기도 했다. 이씨는 “(고인) 엄마가 아들 고생한다고 어디를 가지 못했다”고 했다.
고인은 이발 비용을 아끼려 여동생과 어머니에게 직접 이발을 부탁할 만큼 생활력도 강한 편이었다. 이씨는 “친구가 며칠 전에 아들 머리를 목욕탕에서 깎아줬다고 했다”며 “맨날 헬멧을 써서 머리가 다 빠졌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열심히 산 애가 이렇게 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어제 뉴스를 보는데 명일동에서 오토바이가 추락했다고 해 설마 친구 아들일까 걱정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고인은 사고가 난 당일도 배달 일을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의민족 측은 “고인이 배민 커넥터로 등록해 활동한 게 맞는다”며 “조문 및 유족의 심리 상담, 법률 상담, 산재 보험 등 필요 사항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자기 힘든 얘기 하나도 안 하는 묵묵한 우리 조카…"
고인의 외삼촌인 안정환(56)씨는 그저 환하게 웃고 있는 조카의 영정 사진만을 바라봤다. 안씨는 “자기 힘든 얘기는 안 하고 묵묵히 일만 하던 착한 아이였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 돈을 받을 게 있어 소송 중인 게 있었고, 사업에 배달까지 투잡을 뛰다 보니 많이 힘들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30이 넘었지만 결혼도 안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여동생은 결혼시킨 오빠였다”며 “할머니에게도 늘 잘하고, 집안 모든 어른에게 예의 바른 조카”였다고 했다. 안씨는 연신 “우리 착한 조카”를 읊으며 현실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허공을 봤다.
고인은 지난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영외고 앞에서 발생한 싱크홀에 오토바이와 추락했다. 다음 날인 25일 오전 소방에 의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이어 중앙보훈병원으로 이송돼 사망 판정을 받았다. 고인의 발인은 28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분당추모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