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이 산불에 폐허가 돼 있다./연합뉴스

경북 북부권을 휩쓴 ‘괴물 산불’의 희생자들은 상대적으로 거동이 쉽지 않은 노약자들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25일 오후 9시쯤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의 한 요양원 직원과 입소자들이 대피하던 중 산불이 차량을 덮쳤다. 차량에는 직원 2명과 입소자 4명이 타고 있었다.

입소자들은 모두 거동이 불편한 80대 와상 환자로 전해졌다. 직원들은 우선 차 안에 있던 입소자 1명을 빼냈다. 그 직후 확산하는 화염에 차량이 폭발했다. 아직 차에 타고 있던 입소자 3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간신히 차에서 빠져나온 입소자 1명과 직원 2명은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영덕 매정1리에서는 80대 부부가 집 앞 내리막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피하던 중 불길에 갇힌 것으로 추정된다.

영덕 축산면 대곡리에서는 “주택에 불이 붙어 집이 무너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무너진 주택 잔해에서 8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그의 아내는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청송군 파천면과 진보면에서는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숨졌고, 청송 한 도로 외곽에서는 60대 여성이 소사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은 대피를 위해 집을 찾아온 이장이나 행인에게 발견됐다. 급박한 상황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했거나, 집을 빠져나왔더라도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북 의성군 산불이 나흘째 이어진 25일 오후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이천리 야산에 불이 번지고 있다. /뉴스1

영양군 석보면 포산리 삼의계곡 도로에서는 삼의리 이장 부부와 처남댁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도로 옆 배수로에서 발견된 이들은 마지막까지 산불로 빠져나오지 못한 마을 주민을 구하려고 이동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한 주택에서도 80대 남성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남성이 발견된 주택은 산불로 인한 화재로 모두 타버린 상태였고, 화재 현장에서 사람의 뼛조각 일부가 발견됐다.

피해자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층이 다수로 주택, 마당, 도로 등에서 급속도로 번지는 불길을 피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대피를 준비하거나 대피하다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는 불길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질식이나 화상 등으로 숨진 사례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