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국내 최대 금강송(金剛松) 군락지가 있는 마을이다. 이날 특별한 식목일 행사가 열렸다. 마을 주민 5명이 부인회장 집 거실에 모여 앉아 늙은 호박을 쪼개고 있었다. 지난달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영덕군에 보낼 호박찰떡을 만드는 중이었다. 소나무 묘목 300그루는 전날 심었다. 박월선(61)씨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요. 호박찰떡이 든든하고 소화도 잘돼서 최고예요. 드시고 얼른 기운 차리시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마을 주민인 천동수 산림청 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 주무관은 ‘FOREST POLICE(숲 경찰)’라고 쓰인 빨간색 조끼를 입고 집집마다 다니며 불씨를 점검했다. 그는 “금강송 수백 그루 심는 것보다 불 안 나게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소광리에는 37가구 60여 명이 산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3배(3700ha)에 달하는 광활한 산에 200년 넘는 금강송 8만5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340여 년 전인 조선 숙종 땐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특별 관리했다. 금강송 한 그루만 베어도 곤장 100대를 때렸다.
금강송은 보통 소나무와 달리 30m 높이까지 곧게 자란다. 300년 이상 자란 금강송은 어른 2명이 팔을 벌려도 다 감싸지 못할 정도로 굵다. 나이테가 촘촘해 더 단단하고 송진이 많아 잘 썩지도 않는다. 그래서 조선 왕실에서 궁궐을 지을 때 썼다.
수백 년간 금강송 숲을 지켜온 주인공은 주민들이었다. 이 산자락에는 과거부터 화전민(火田民)이 많이 살았는데 산불을 막기 위해 주민들끼리 당번을 정해 산불을 감시하는 전통이 있었다. 주민 최수목(64)씨는 “왼쪽 팔뚝에 ‘산불 조심’ 완장을 차고 16㎞씩 산을 타고 다녔다”며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호루라기를 불고 산불 일지에 이름을 써 마을 이장한테 보고했다”고 했다.
정부는 1970년대부터 주민들을 산불 감시원으로 채용했다. 감시 일을 하는 대신 송이를 캘 수 있게 했다. 현재는 10명이 ‘생태관리원’이란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산림청 소광리산림생태관리센터 소속 계약직 직원이다. 박소영 울진국유림관리소장은 “눈 감고도 숲을 다니는 분들이라 공무원들이 오히려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 산불이 울진과 가까운 영덕과 영양까지 번지며 마을에 비상이 걸렸다. 불길이 태풍급 서풍을 타고 마을 50㎞ 앞까지 번졌다. 금강송을 지키는 본부인 생태관리센터 주변 스프링클러가 일제히 물을 뿜어 ‘물 방어막’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등짐펌프’에 물을 채웠다. 배낭처럼 생긴 물통에 호스를 달아 물을 뿌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다행히 바람이 북풍으로 바뀌며 불길은 사그라들었다.
주민들은 “매년 봄 불이 날 텐데 전국 곳곳에 임도(林道)를 만들어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임도는 산불이 나면 소방차가 들어가 불을 끌 수 있게 만든 숲속 길이다.
금강송 숲에는 2021년 만든 임도(7.4㎞)가 있다. 국내 1호 산불 진화용 임도다.
이 임도는 2022년 울진 산불 때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산불은 울진 대부분 지역을 휩쓸었다. 주민들은 임도에서 불길을 막아냈다. 주민 이현석(68)씨는 “소방차 100대가 임도에서 일주일간 밤낮없이 물을 뿌렸다”며 “주민들도 양수기, 등짐펌프 등을 다 들고 나와 힘을 보탰다”고 했다. 주민들은 그날을 ‘소광리대첩’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다. 이씨는 “임도가 없었으면 낮에 헬기로만 불을 끄다 금강송이 다 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요즘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오르며 수백 년을 버틴 금강송도 말라 죽어가고 있다. 600년 산 금강송도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 김진업 소광2리 이장은 “6·25전쟁도 산불도 버텼는데 하늘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