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지 나흘째인 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와 인근 안국역 일대는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탄핵 선고 이후 첫 평일을 맞은 이날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른 광화문 일대는 봄 나들이를 온 반팔 차림의 외국인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북적였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출구를 막았던 경찰 차벽도 상당수 철거됐다. 작년 12·3 비상 계엄 이후 4개월간 매출이 급감해 어려움을 호소했던 식당·상점들은 이날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7일 오후 서울 경복궁 광화문 앞의 풍경.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에선 최근까지 더불어민주당 등이 천막 40여 개를 치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를 열었었다. /장련성 기자

이날 오후 본지 취재팀이 헌재와 인근 안국역·인사동 일대를 찾았더니 나들이에 나선 가족들과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카페와 음식점에는 손님들로 북적였고, 유명 맛집에도 긴 줄이 이어졌다. 헌재 정문에서 160m 떨어진 카페 ‘스탠다드브레드’ 야외 테라스 테이블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직원 임모(25)씨는 “탄핵 직후 시위대가 몰리고 경찰 차벽이 세워진 후에는 야외 테라스가 텅 비었었는데 탄핵 여파가 끝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고 했다.

이날 서촌 곳곳에는 매화와 벚꽃이 피었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반팔과 민소매를 입은 관광객도 상당수였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 골목 곳곳이 관광객들로 붐볐다. 인근 공원에는 여유롭게 스트레칭을 하는 50~60대 중장년층과 정자 인근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초등학생 아이들로 붐볐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주민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탄핵 선고 당일 문을 닫았던 헌재 주변 경복궁·덕수궁·창덕궁·청와대 등 관광 명소들도 지난 5일부터 운영을 재개했다. 이날 오후 3시 경복궁은 수백 명의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복을 입은 외국 관광객들이 활짝 핀 매화꽃과 살구꽃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복을 입고 친구와 경복궁을 찾은 대학생 이원희(28)씨는 “집회와 각종 천막이 보기 싫어 종로는 그간 찾지 않았었다”며 “다시 경복궁에 봄이 온 것 같아 마음의 위안이 된다”고 했다. 지난 2일 서울에 관광 온 프랑스인 마린(30)씨는 “궁 너머 북악산 전경에 반했다”며 “한복을 입고 궁궐 안을 걸으니 조선 시대를 경험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경복궁 관계자는 “전주와 비교해 단체 관광객이 20~30% 늘어났다”고 했다.

헌재 주변 상인들은 “긴 터널을 지나 드디어 일상이 되돌아왔다”고 했다. 헌재에서 불과 100여m 떨어져 있는 묵호횟집 주인 백승훈(49)씨는 이날 “탄핵 선고 전까지 28개 테이블 중 30%도 안 차 정말 고비였는데 오늘은 거의 다 찼다”며 “정말 얼마 만에 이렇게 바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헌재에서 10m 떨어져 있는 유명 이탈리아 식당도 이날 점심 손님들로 북적였다. 20년간 ‘헌재 앞 터줏대감’으로 유명한 이 식당은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문을 열었지만 이번엔 경찰 차벽으로 주위가 막히면서 선고 당일인 지난 4일 영업 20년 만에 처음으로 평일 장사를 접었었다. 헌재 입구에서 30m 떨어진 햄버거집 직원 진명재(32)씨는 “헌재 선고 전후로 매출이 30% 감소하고, 선고 직전엔 배달 주문도 거의 안 들어와 힘들었다”며 “오늘은 관광객들이 몰려 잠시도 쉬지 못할 만큼 바빴다”고 했다.

광화문과 안국역 곳곳에 붙어 있던 집회 포스터, 응원 화환 등은 자취를 감췄다. 종로구청은 탄핵 선고 당일인 지난 4일 하루 동안에만 광화문과 종로구 일대에서 약 35톤 분량의 폐기물을 수거했다고 밝혔다. 구청은 탄핵 찬반 지지자들이 잇따라 보내 헌재 앞을 빼곡히 메웠던 화환 1200여 개도 수거했다. 민주당 등이 광화문 앞 인도에 설치했던 천막 40여 개도 자진 철거했다. 7일 광화문 등 서울 주요 도심에서는 탄핵 관련 집회·시위가 한 건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도 광화문 도심 곳곳에서 집회가 이어졌지만 찬탄·반탄 시위대 간 혹은 시위대와 경찰 간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한편 탄핵 심판 여파로 연기됐던 서울 윤중로 벚꽃축제가 오는 8일 시작된다. 축제 운영을 위해 이날 오후부터 차량 통제가 시작된다. 통제 구간은 국회 뒤편 여의서로와 서강대교 남단 공영주차장~여의 하류IC 일대다. 혼잡이 예상되는 벚꽃길과 여의나루역 주변엔 경찰 및 소방 인력 등이 집중 배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