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도움받았잖아요. 이번엔 제가 도울 차례인 것 같아요.”
경남 함양에 사는 박지훈(가명‧73)씨는 최근 이랜드복지재단에 작은 봉투를 전달했다. 그 안에는 자필로 쓴 편지와 함께 20만원이 담겨 있었다. 얼마 전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성금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씨에게 20만원은 한 달 생계를 이어갈 만큼의 소중한 금액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기부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제가 받은 도움에 비하면 정말 작다”며 부끄러워했다.
박씨가 자신의 한 달 생활비를 기꺼이 내놓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불과 몇 개월 전, 그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35년 전 이혼 후 혼자 살기 시작한 그는 일용직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점점 악화되는 허리 디스크로 일하기 힘든 시점이 왔고, 생계가 막막해진 박씨는 여동생이 사는 시골로 귀촌했다. 하지만 여동생의 삶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동생 역시 기초생활수급자였고, 여동생의 배우자는 폐암 투병 중이었다.
박씨는 무보증 월세집에서 홀로 생활하며 매월 나라에서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끼니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작년 여름, 박씨는 전립선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박씨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수술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들어놓은 보험도 없었고, 암 투병 중인 여동생 부부에게 손을 빌릴 수도 없었다.
박씨는 “동생한테 손 벌리는 건 비참한 일이었다”며 “몇 백만원이 없어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사람 목숨에도 값이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때 박씨의 사연을 접한 이랜드복지재단이 ‘SOS 위고’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수술비를 긴급 지원했다. 통상 국가나 복지 단체로부터 지원받으려면 수개월이 걸리지만, SOS위고를 통하면 신청 후 3일 이내에 긴급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긴급 지원금이 마중물이 되어 지자체와 병원도 함께 힘을 보탰다. 박씨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항암 치료 없이도 회복할 수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박씨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도움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달을 살아갈 생활비 20만원을 선뜻 성금으로 내놨을 것이다.
박씨는 “TV에서 산불로 피해 보신 분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봤다”며 “얼마 전 삶의 끝에 서 있던 저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있는 사람은 안다”며 “그 끝에서 만난 주변의 관심과 응원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를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돈이지만 제가 받았던 희망을 그분들에게 다시 전하는 데 보태고자 한다”며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