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북 의성, 경남 산청 등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31명이 죽고 산림 등 4만8000ha가 불탔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65배다. 이재민은 3만7000명에 달했다. 그동안 가장 큰 산불은 2000년 강원도 동해안 산불(2만3794㏊)이었는데 이 2배 이상 큰 상처를 남긴 것이다. 경북도는 10일 이번 산불 피해를 복구하는 데 경북 지역만 2조7000억원이 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산불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도 경남 하동, 울산 울주, 대구 등에서 산불이 번졌다.
전문가들은 “이상 기후의 여파로 매년 봄마다 대형 산불이 반복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산불 전문가 4명의 의견을 들었다. 남성현 전 산림청장, 정우담 미 오리건주립대 교수, 최무열 한국임업진흥원장, 박준영 전 전남지사다.
◇남성현 전 산림청장
남성현 전 산림청장은 산불을 막기 위해선 숲 속에 임도(林道)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임도는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는 숲속 찻길을 말한다. 헬기는 안전상 야간에 투입할 수 없는데 임도가 있으면 숲속에 소방차를 대고 밤에도 물을 뿌릴 수 있게 된다. 지난달 영남 지역 산불 현장에선 낮에 애써 잡은 산불이 밤만 되면 다시 번지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경북 지역의 피해가 컸던 이유도 다른 지역보다 임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남 전 청장은 “경북은 특히 개인이 소유한 사유림이 많아 임도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임도를 개설할 때 국유림은 정부가 비용을 100% 부담하지만 사유림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90%, 소유주가 10%를 낸다. 산림청에 따르면 임도 1㎞를 만드는 데 드는 돈은 약 3억3500만원이다. 소유주는 그중 335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임도 개설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올봄 경북 일대에 창궐했던 소나무재선충병도 산불을 키운 원인으로 꼽았다. 산림 당국과 경북도는 재선충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베어낸 뒤 숲속에 쌓아뒀는데 이게 땔감이 됐다는 것이다. 남 전 청장은 “경북 산에만 이런 나무 더미가 50만개나 됐다”며 “봄철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도는데 방제 작업을 한 뒤 잘라낸 나무를 바로 빼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 전 청장은 “전국에서 동시다발하는 산불을 막으려면 담수량 5000L 이상인 대형 헬기가 최소 24대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산림청이 보유한 대형 헬기(5000L 이상)는 7대다. 주력 헬기인 러시아제 카모프는 담수량이 3000L로 적은 데다 그마저 29대 중 16대만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 남 전 청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품 공급이 끊겨 카모프 헬기 8대에서 뜯어낸 부품을 나머지 21대에 끼워 맞추는 실정”이라고 했다. 물 8000L를 뿌릴 수 있는 미국 시코르스키 헬기는 1대당 가격이 500억원이 넘는다.
“이제는 산불도 전쟁으로 봐야 합니다. 국방비 책정하듯 고정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여야가 싸우느라 매년 예산 증액이 안 돼요.”
◇정우담 美 오리건 주립대 교수
정우담 교수는 2014년부터 미 오리건 주립대 산림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과 한국의 산림 정책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한국은 산불이 나면 헬기의 역할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지상 진화 인력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은 진화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레드 카드’란 자격증 제도를 운영한다. 산불 진화와 관련된 교육·실습과 체력 시험을 통과하면 진화 대원으로 활동할 자격을 주는 것이다.
대형 산불이 나면 레드 카드를 가진 사람 1000명 이상이 모인다고 한다.
정 교수는 “산불 진화 자격증을 만들고 수당도 보통 아르바이트보다 2~3배를 주니 대학생들도 레드 카드를 많이 딴다”고 했다. 산불 현장에 뛰어들면 시간당 30달러(약 4만3700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산불 진화 능력을 갖춘 ‘산불 예비군’ ‘진화 기동대’를 최대한 확보해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매년 봄 3~4개월씩 일용직 일자리로 산불 감시 요원을 채용하고 진화 현장에도 투입한다. 이 때문에 노인이 대부분이고 전문성을 쌓기도 어렵다. 실제 진화는 산림청 소속 진화대원 400여 명에게 의존하는 상태다.
정 교수는 미국은 ‘간벌 (thinning)’과 ‘처방화입(prescribed fire)’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간벌은 숲이 너무 빽빽해지지 않게 나무를 베는 것이고, 처방화입은 산에 쌓인 낙엽을 계획적으로 태우는 것이다.
지난달 경남 산청 지리산 일대에 확산한 산불은 진화에 열흘이 걸렸는데 어른 허리춤까지 쌓인 낙엽이 원인이었다. 산불 헬기가 물을 쏟아부었지만 낙엽 속 잔불이 강풍을 타고 계속 살아났던 것이다. 정 교수는 “산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산불의 ‘연료’를 최대한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미국은 수시로 나무를 베어내고 낙엽을 긁어 불태운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간벌을 환경 파괴로 보지만 미국처럼 체계적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미국은 간벌을 하기 전에 벌채 전문가, 야생동물 전문가, 환경 전문가 등이 모여 간벌을 할 지역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한다. 주민 공청회도 거친다.
◇최무열 한국임업진흥원장
지난달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순식간에 확산한 원인 중 하나로 소나무가 꼽힌다. 의성 등 경북 지역엔 특히 소나무가 많이 사는데 송진을 품고 있어 참나무 등 활엽수보다 더 잘 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무열 한국임업진흥원장은 “소나무는 죄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바위산이 많고 토심(흙의 깊이)도 평균 57㎝밖에 안 돼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는 나무가 소나무예요. 그래서 소나무가 많은 겁니다. 문제는 사람이지요.”
지난달 경북 의성 산불도 과수원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산이나 밭에서 쓰레기를 태우면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계도(啓導) 조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산불 낸 사람은 패가망신한다는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기 전까지는 산불이 계속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달 산불로 나무나 송이버섯 등을 키우는 임업인들도 막대한 피해를 당했다. 국내 송이 채취량의 30%를 차지하는 경북 영덕에선 소나무 숲이 대부분 불타 캘 송이가 사라졌다.
최 원장은 “산불 보험이 없다 보니 임업인들은 남이 낸 산불에 전 재산이 불타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며 “이번에 임업인들에 대한 보상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효율적인 산불 진화 대책을 묻자 최 원장은 “산에서 나무를 키우는 임업인들도 한결같이 얘기하는 게 임도(林道)”라고 했다. 임도는 소방차 등이 들어갈 수 있는 숲속 길이다. “임도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산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도 필요해요.” 산에서 베어낸 나무를 옮길 때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최 원장은 우리나라는 산을 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있어 이도 저도 못 하고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제 산림 녹화(綠化)는 달성했어요. 그 다음을 봐야죠.”
일각에선 소방청으로 산불 진화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산림청의 산불 진화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최 원장은 “건물 화재와 산불은 완전히 다르다”며 “나무와 산을 모르는 소방청이 산불 진화를 어떻게 지휘하느냐”고 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
“숲을 자원으로 보고 가꾸면 산불은 저절로 줄어듭니다. 다 자란 나무를 잘라내는 간벌(間伐)을 죄악시해선 안 됩니다.”
박준영 전 전남지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04년부터 11년간 전남지사를 지냈다. 2008년 전남 화순 산불 등 크고 작은 산불을 겪으며 내린 결론이다.
그는 2005년부터 ‘숲 가꾸기’ 사업을 시작했다. 핵심은 다 자란 나무를 잘라내 숲의 밀도를 낮추고 수시로 잡목과 낙엽, 솔방울 등을 치우는 것이다.
박 전 지사는 2008년 화순군 도암면 산불 때 ‘숲 가꾸기’ 사업의 산불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고 했다. 당시 운주사 뒤편에서 불이 났지만 불길이 절 안으로 번지지 않았다. 운주사는 원형 다층석탑, 석조불감 등 보물을 품고 있는 사찰이다. 박 전 지사는 “2005년부터 운주사 주변의 숲을 간벌하고 낙엽을 긁어낸 덕분”이라며 “불이 번지는 ‘도화선’이 사라지니 피해가 적었다”고 했다. 간벌 작업을 하기 전 운주사 주변은 낙엽이 어른 무릎까지 쌓였었다고 한다.
박 전 지사는 “간벌한 나무를 산에 그대로 두면 불을 키우는 장작이나 불쏘시개가 된다”며 “간벌한 나무를 빼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만든 게 ‘나무 은행’이다. 그는 2007년 전남에서 가장 숲이 많은 화순과 곡성에 나무 은행을 설립했다. 간벌한 나무를 가로수나 목공예 재료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중개하는 기구다. 나무 은행을 통해 곡성에서 뽑아낸 소나무가 가로수가 됐다. 목공예 애호가들에겐 잘라낸 나무를 공짜로 나눠줬다. 간벌을 해 생긴 공간에는 칡이나 버섯, 도라지 등을 심어 주민들이 캘 수 있게 했다. 그는 “나무 은행을 만드니 간벌도 활성화되고 산에도 불쏘시개가 남지 않아 일거양득”이라고 했다.
박 전 지사는 “빽빽한 숲을 중간중간 솎아내면 햇볕이 잘 들어 흙속의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지고 낙엽이 빨리 썩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흙이 더 많은 빗물을 머금을 수 있어 산불이 덜 확산한다고 한다.
“이렇게 노력한 덕분에 전남에선 2008년 이후 큰 산불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숲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됩니다. 이제 ‘관리’해야 해요. 사람이 사는 마을 근처 야산부터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