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에 가로 6m, 세로 4m, 깊이 2.5m의 싱크홀이 발생해 승용차 한 대가 빠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방에서 달리는 차 조심하는 것도 힘든데, 이제는 땅 꺼지는 것까지 걱정해야 하나요?”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배달 기사 김은국(45)씨는 한숨을 쉬며 “아무리 안전 운전을 해도 땅이 무너지는 건 어떻게 피하겠나”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영외고 앞 도로에 생긴 가로 18m, 세로 20m, 깊이 18m 규모 싱크홀에 매몰됐던 오토바이 배달 운전자 박모(34)씨가 사망한 사건을 언급하면서 “(주변 배달 기사들이) 강동구 쪽으로는 얼씬도 안 한다. 배달 콜이 들어와도 잡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당시 멀쩡하던 도로가 갑자기 폭삭 내려앉고 오토바이 운전자가 손쓸 틈도 없이 싱크홀로 빠지는 영상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개되면서 이들 사이에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본지가 지난 10일부터 이날까지 나흘간 만난 서울 시민들은 “서울 전역 도로가 ‘지뢰밭’ 같다” “추가 대형 싱크홀의 전조(前兆) 증상 아니냐”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특히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강동구 명일동에 이어 인근 길동에서도 잇따라 싱크홀이 발견되면서 주민들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1시 서울 강동구 길동역 1번 출구 앞 도로가 함몰된 곳은 사망자가 발생한 명일동 싱크홀 현장에서 남서쪽으로 1.7㎞ 떨어져 있었다. 지반이 내려앉아 표면에 구멍이 생기는 싱크홀과 달리 빈 공간 없이 움푹 파이기만 하면 함몰이라고 한다. 함몰 규모는 가로 50㎝, 세로 1m, 깊이 5㎝ 정도였지만 도로 50m 구역이 한동안 통제됐다. 정부 당국은 도로 밑 폐상수도 파이프가 파손되면서 물이 샜고 지반이 약화돼 도로가 내려앉은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지난 2일에도 명일동 싱크홀에서 남서쪽으로 980m 떨어진 길동 신명초등학교 교차로에서도 소규모 싱크홀이 발생했지만 서울시와 구청은 이 지역 인근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싱크홀의 원인은 주로 무리한 지하 개발, 노후 상하수도관 파열, 지하수 유출 등이다. 특히 최근엔 잇따른 지하 공사로 인한 지반 불안정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명일동 싱크홀 사고 역시 인근에서 진행 중인 9호선 연장 공사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3년(2022년 3월~2025년 3월)간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싱크홀 63개의 원인으로는 ‘하수관 손상’(26개)이 가장 많았다. 이어 흙을 다져 빈 공간을 채우는 되메우기 작업 불량(10개), 지반 굴착 공사 부실(8개), 상수관 손상(6개) 등 순이었다. 서울 전체 상·하수관 2만4149㎞ 중 30년 이상 된 노후 수도관은 44%(1만742㎞)에 달한다. 서울시는 올해는 약 2000억원을 들여 노후 하수관 100㎞와, 약 1500억원을 들여 노후 상수관 89.2㎞를 정비할 예정이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고쳐야 할 상·하수관은 늘어나는 게 문제다.

계절별로는 싱크홀 중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여름(6~8월)에 발생한 싱크홀이 28개로 절반 가까이(44.4%) 됐다. 홍성걸 서울대 교수는 “공사장 근처 지반이 모래가 많이 섞여 있는 연약 지반인 경우 싱크홀이 생길 위험이 더 크다”며 “도심 지하 개발에 나서기 전 지하수 영향 조사 범위를 대폭 넓히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했다.

땅 꺼짐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특히 서울 지역에서 싱크홀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전국 싱크홀 신고·처리 자료’를 보면 서울 지역 신고 건수는 2022년 67건에서 2024년 251건이 돼 2년 새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증가세다.

그래픽=양인성

시민들 불안이 고조되자 서울시는 서울 시내 대규모 지하 굴착 공사장 주변에 지표 투과 레이더(GPR) 탐사를 실시한다고 이날 밝혔다. GPR 탐사는 지하로 고주파 전자기파를 쏘아 반사되어 돌아온 결과를 바탕으로 지하 구조 및 상태를 영상화하는 탐사법이다. 시는 이를 위해 3곳의 도시철도 건설 구간(총 18.5㎞)과 인근 도로를 포함해 41명의 전문 인력과 15대의 장비를 투입해 지난달 말부터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한편, 이날 부산에서도 도시철도 공사 현장 인근에서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날 5시 40분쯤 사상구 학장동의 한 횡단보도에 가로 5m, 세로 3m, 깊이 4~5m의 대형 싱크홀이 생겼다. 이 공사 현장 주변에서 발생한 사고만 지난해 6차례였다. 전국에서는 싱크홀을 포함해 매년 평균 191건의 지반 침하가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지하 안전 정보 시스템(JIS)에 따르면 2022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3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지반 침하는 451건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