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마지막 남은 성매매 집결지로 불리는 ‘미아리 텍사스(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소재)’의 강제 철거에 반발한 미아리 성매매 종사자들이 17일 오전부터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전날 서울북부지방법원이 미아리텍사스의 철거를 위한 첫 명도 집행(강제 철거)에 나서면서, 이를 막겠다는 취지다. 이들 중 일부는 옷을 벗은 채 도로 위에 드러누우며 저항했다.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미아리 성노동자 이주대책위원회가 미아리 텍사스 명도집행 단행에 반발하고 있다. /뉴스1

미아리 성노동자 이주대책위원회(이주대책위) 50여 명(경찰·주최 추산)이 이날 오전 5시 30분부터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현장에는 경찰 기동대 15명이 배치됐고, 이 중 절반은 방패를 들고 있었다. 성북구 직원들과 성북경찰서 경찰 30여 명이 구청 건물과 시위대 사이에 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이날 오전 7시쯤 찾은 이곳에선 한국여성단체연합 20여 명과 미아리 성노동자 3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우리는 살고 싶다’ ‘성북구청은 우리 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맞는 이주 대책을 강구하라’ ‘갑질, 악질 롯데건설 OUT’ 등이 적힌 피켓을 성북구청 앞 인도와 성북구청 입구 등에 세웠다. “이승로(성북구청장) 사퇴하고 성북구청 해체하라” “주민 생명을 보장하라”는 구호도 외쳤다.

이들 중 일부는 어제 법원의 명도 집행 당시 신발도 신지 못했다며 맨발로 서 있거나, 잠옷 차림인 경우도 있었다. 이어 미아리 텍사스에서 성매매 종사자로 일하다 불법 추심에 시달려 작년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30대 싱글맘 S씨를 추모하며 묵념했다. S씨는 숨지기 전 유서에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고 썼다. 

17일 서울 성북구청 앞에서 열린 미아리 성노동자 이주대책 마련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시위에는 경찰과 집회 참여자 간의 대치도 벌어졌다. 오전 6시쯤 경찰이 “시위 신고가 오전 9시부터 돼 있다”며 시위 적법성 여부를 점검했고, 경찰 10여 명이 출동해 채증을 시작하자 시위 참여자들이 “무슨 행위가 있었는지 밝히지도 않고 채증부터 하는 건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물리적 충돌은 현재까지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재개발로 인한 미아리 텍사스 폐쇄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2023년 11월부터 성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해왔다. 이번 집회는 전날 서울북부지법의 명도 집행에 대한 항의로, 명도 집행은 임대차 관계가 종료되었는데도 임차인이 부동산을 집주인에게 반환하지 않는 등의 상황에서 임대인이 이를 강제로 집행하는 것을 뜻한다. 어제 집행 과정에서도 경찰과 성매매 종사자 간의 대치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곳이 집창촌이 된 1960년대 후반부터다. 서울역 앞 양동과 종로3가에 있던 사창가가 도심 재개발로 철거되면서 터전을 잃은 성매매 종사자들이 이 동네로 모여들었다. 한때 업소 500여 곳, 성매매 여성들이 400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2000년 당시 이곳을 관할하는 종암경찰서 김강자 서장이 ‘성매매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곳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2004년엔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되며 단속이 대폭 강화됐다. 현재는 업소 35~40여 곳, 종사자는 60여 명만이 남은 것으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