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지음|장대익·황상익 옮김|출판사 바다출판사|가격 1만8000원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정치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군주론’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적 행위를 강조하며 권력을 냉정하게 묘사했지요. 그런데 만약 침팬지가 ‘군주론’의 이론을 따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소개할 책에 따르면 침팬지 사회에서도 놀라울 만큼 인간 사회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인 저자는 네덜란드의 한 동물원에서 침팬지의 행동을 6년간 연구했습니다. 장기간의 연구 과정에서 저자는 동물의 세계가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 같은 단순한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권력 투쟁, 동맹, 배신, 협상, 화해 등 다양한 수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죠. 이 책에는 스물세 마리의 침팬지가 등장합니다. 늙은 지도자 ‘이에룬’과 젊고 야망에 찬 ‘라윗’, 또 다른 침팬지 ‘니키’ 사이에서는 마치 정치 드라마 같은 복잡다단한 상황이 벌어져요. 여장부 ‘마마’, 지위는 낮지만 똑똑한 ‘단디’, 마치 소개팅 주선자 역할을 하는 마당발 ‘파위스트’ 등 매력적인 조연의 활약도 흥미진진합니다.

우두머리 이에룬과 2인자 라윗은 늘 서로를 시기하며 싸워요. 하지만 이 투쟁 과정에도 이에룬과 라윗은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모습을 보이며 침팬지 무리를 안심시킵니다. 대립만 일삼는 인간 정치보다 침팬지 정치가 나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침팬지의 정치 행위는 권력 투쟁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짝짓기가 대표적인데, 파위스트는 늘 발정이 난 암컷 주변에 머무르며 다가오는 수컷을 방해하죠. 파위스트의 허락이 있어야 짝짓기가 가능한 상황에 이르며 그녀는 무리에서 이득을 챙깁니다.

침팬지들은 때로는 누군가를 따돌리기도 하고, 싸움을 부추기기도 하고, 심지어 꾀병을 부리기도 해요. 연합을 맺어 강한 상대에게 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본능을 억제하며 자신을 낮추기도 합니다. 놀라울 만큼 인간 사회와 닮은 현상들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를 관찰하기 위해 저자는 동물들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한없이, 가만히 기다립니다. 침팬지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침팬지의 인사 횟수를 분석하고, 교미 관계와 빈도까지 풀어내는 등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합니다.

이 책은 미국 의회의 필독서 목록에 수년 동안 등록되어 있었어요. 미국 하원 의장을 지낸 뉴트 깅리치는 “이 책을 읽고 나면 펜타곤, 백악관, 의회가 예전과는 달라 보일 것”이라고 했지요. 노련한 정치인에게도 영감을 줄 만큼 정치의 본질을 비추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책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기원보다 오래됐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행동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