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R.U.R)
카렐 차페크 지음|김희숙 옮김|출판사 모비딕|가격 1만2500원
이제 로봇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집에서 청소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공공장소에서 길을 알려주고,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도 활약하고 있지요. 그런데 ‘로봇’이라는 단어가 백 년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오늘 소개할 책은 ‘로봇’이란 단어를 처음 세상에 등장시킨 작품입니다. ‘로봇(robot)’은 저자의 형 요제프 차페크가 제안한 단어로, ‘노동’ 또는 ‘강제 노동’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미 단어 자체에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숨어 있었던 것이죠.
1920년 체코에서 발표된 이 희곡의 배경은 로봇 공장이 있는 어느 섬입니다. “로봇들이 모든 것을 생산해서 더 이상 가난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이 공장의 사장 ‘도민’은 로봇 덕분에 인간은 일할 필요가 없는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그리고 실제로 공장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로봇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이상 노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되죠.
그런데 로봇은 축복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인간 세상은 로봇 때문에 ‘저주받은 낙원’으로 변하고 말죠. 이전처럼 많은 사람이 필요 없게 되니 출생률이 점차 감소하는데, 이때를 틈타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에요. 로봇 지도자는 말합니다. “만국의 로봇들이여! 여러분은 인류를 몰살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오직 공장과 철도, 기계와 광산, 천연자원들만 남겨두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은 전부 다 파괴하라.”
결국 로봇들은 인간을 몰아내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간과 함께 로봇 제조 설명서가 사라져 버려 더 이상 로봇 생산이 불가능해진 것이죠. 로봇들은 생존한 인간 ‘알퀴스트’에게 로봇을 다시 만들라고 하지만, 몇 년의 노력에도 성공하지 못했죠. 로봇 지도자 ‘다몬’은 자신을 분해해서라도 생산 방법을 알아내라고 해요. 그런데 막상 해부 직전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야기의 결말엔 희망도 깃들어 있습니다. 알퀴스트가 또 다른 로봇인 ‘헬레나’를 해부하겠다고 하자 함께 제작된 로봇 ‘프리무스’가 자신이 대신 희생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여기서 알퀴스트는 로봇에도 사랑의 감정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로봇이 마치 ‘아담과 이브’처럼 새로운 종의 시작이 되리라 생각하며 이야기는 막을 내리죠.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기술에 대한 경고만은 아니었어요. 그는 로봇을 만든 인간의 욕망과 허무함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기술 발전과 인간 윤리의 문제, 인간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를 주죠. 기발한 상상력으로 쓰인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정확히 예견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