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일본 총리가 1976년 ‘록히드 사건'으로 검찰에 체포된 배경에 중국과 수교를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이 있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나카는 1972년 7월부터 2년 5개월간 총리로 재직했고, 퇴임한 지 2년 만에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됐다.
마이니치신문은 22일 언론인 하루나 미키오(春名幹男)가 최근 미국의 기밀 자료를 바탕으로 쓴 책 ‘록히드 의옥(疑獄)’이 출간되자 “(책이) 이 사건의 배경에 외교가 있음을 발굴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요미우리신문도 이 책에 대해 “전후 일본의 최대 부패 사건의 진상에 다가섰다”고 평가했다.
다나카는 총리 재직 당시 미 방산업체 록히드에서 5억엔을 받고 전일본공수(ANA)에 이 회사의 비행기를 사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로 체포됐다. 총리 퇴임 후에도 100여 명의 의원들을 이끌며 막후 실력자로 활동하던 그의 구속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 책은 다나카가 미국에 앞서 중국과 수교한 데 대해 닉슨 정권의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격노한 것이 배경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1년 7월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한 키신저는 이듬해인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 방중을 성사시킨 후, 미·중 수교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보다 먼저 움직여 중국과 수교한 국가는 일본이었다. 다나카는 1972년 7월 ‘일·중 수교’를 공약으로 내걸고 자민당 총재에 당선돼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관저에 들어간 후 두 달 만에 베이징으로 날아가 전격적으로 중국과 수교했다.
이에 대해 키신저가 “잽스(일본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영어 표현)가 (중국에 대한 외교 성과를) 가로챈다”고 화를 낸 기록을 저자가 확인했다. 저자는 미국의 외교문서에 근거, 중국에 급속히 접근한 다나카의 외교정책을 경계하던 키신저가 다나카 몰락의 원인이라고 했다. 다나카가 일본 검찰에 체포되어도 상관없다고 보고 ‘Tanaka’라고 적힌 증거 문서를 일본 측에 넘기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증거 문서엔 다나카가 전일본공수에 압력을 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록히드 사건이 일어난 70년대는 전후 국제 질서의 변동이 시작된 시대”라며 “이 사건은 이러한 구조 변화의 귀결(歸結)이라는 측면을 가진다”는 서평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