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3년 10월 9일 아내와 결혼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김포공항으로 이동하던 중 버마(지금의 미얀마) 아웅산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 소식을 들었다. 17명의 한국 정부 각료와 대통령 수행원들이 사망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곧 전쟁이 날 거라고도 했다. 그래도 예정된 일정이라서 제주로 날아간 우리 부부는 장송곡만 흘러나오는 TV를 보며 음주 가무가 금지된 3일간의 신혼여행을 마무리해야 했다. 나와 아내가 꿈꾸던 달콤한 신혼여행도 그렇게 날아가버렸다.

/SC제일은행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작은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때 우리 신혼집을 방문한 첫 번째 손님이 조선일보 지국 판촉 담당 직원이었고, 그것이 조선일보와 37년 인연의 시작이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시시각각으로 온라인 기사를 접하지만, 저녁에 귀가하면 늘 조선일보를 펼치고 하나하나 다시 정독한다. 해외 출장 등으로 며칠 건너뛰어도 주말에 몰아서 다 읽는다. 눈에 띄는 기사가 보이면 스크랩해두었다가 임직원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경영 전략 수립에 참고하기도 한다. 주말판 섹션 콘텐츠들도 취재 범위가 넓고 최신 트렌드를 다루면서도 오래 묵은 놋그릇처럼 견고하고 청명하여 수시로 깊은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시간을 두고 고민하며 다듬은 노력이 돋보인다.

디지털과 정보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비대면 거래가 산업 전반에 확산되고 과거 아날로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은 곧 사라져갈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종이 신문과 같은 오프라인 방식의 소통도 더욱 차별화할 수 있고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각종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많은 정보가 전파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활자 정보를 무려 100년 동안이나 정해진 시간에 독자에게 전달하며 쌓아온 전통 언론의 사실 검증 능력은 더욱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본다.

언론의 몫은 사실의 전달이고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나는 조선일보와 같은 정통 언론이 요즘 같은 정보 홍수 시대에 독자의 판단을 더 예리하고 합리적으로 다듬어주는 숫돌과 같은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87년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88올림픽, 금융실명제, IMF 외환 위기, 9⋅11 테러, 대통령 탄핵 등 굵직한 역사적 현장을 함께한 조선일보를 앞에 두면 다사다난했던 37년 세월을 함께 버티고 이겨낸 아내를 보는 것 같다. 때로는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했지만, 어려울 때는 내 편이 되어주고,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조언과 비판을 서슴지 않던 고마운 아내가 조선일보와 많이 닮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