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는 전통주를 우리 세대 감성으로 해석해 새로운 문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게 문화, 트렌드가 되면 미래로도 연결될 수 있죠.”

한강주조 고성용 대표가 지난달 27일 기포가 올라오는 발효탱크를 감싸 안으며 웃고 있다. /김지호 기자

서울 성수동의 한 허름한 건물에 들어서자 고소한 고두밥 냄새가 코끝에 와 닿았다. 간판도 안 달린 입구 너머로 고두밥 냉각기와 거대한 발효 탱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뽀글뽀글 소리가 들리시나요? 이 소리만 들어도 막걸리가 얼마나 잘 익고 있는지 알 수 있죠.” 2030세대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인 ‘나루생막걸리’를 만드는 고성용(39) 한강주조 대표가 발효 탱크에 귀를 바짝 붙이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성수동 양조장에서 만난 그는 “젊은 세대는 전통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그 틀을 깨고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대학에서 벤처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주얼리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다. 퇴사 이후 성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막걸리 양조장을 만들게 된 건 같은 회사 ‘술친구’인 이상욱 이사와 술잔을 기울이면서다. “맥주 만드는 사람은 많은데 왜 막걸리 만드는 사람은 없지?” 그 길로 양조장 주인이 됐다. “처음부터 막걸리는 아니었어요. 당연히 ‘맥주를 만들까?’ 생각도 했죠. 하지만 전통주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충분히 매력이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을 겨냥하면 오히려 이게 블루오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막걸리는 서울 강서구에서 나는 ‘서울 쌀’로 만든다. “서울에서 막걸리를 만드는데, 그렇다면 서울에서 난 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죠. 정체성이 흔들리면 안 되니까.” 양조장 위치를 성수동으로 잡은 이유도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어지는 곳”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성수동엔 오랫동안 정착해 사는 분도 많고, 창업에 들어선 젊은 사람도 많아요. 이런 공간적 특성이 ‘막걸리 정신’에도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죠.”

막걸리 개발은 쉽지 않았다. 인공 감미료를 뺀 채 쌀 자체로 단맛을 내려다 보니 원재료값이 많이 들었다. 탄산을 넣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내는 데에도 수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처음엔 발효 탱크가 3개였어요. 언제 저걸 다 채우나 싶었죠.” 꾸준한 연구 끝에 지금의 막걸리가 탄생했다. 발효 탱크는 10개로 늘었다. 한 달 생산량이 5만병인데,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처음부터 타깃은 젊은 층이었다. “이미 선호하는 막걸리가 있는 장년층을 우리 소비자로 끌어들이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막걸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겨냥해보자 생각했어요.” 실제 주 소비층은 30대 여성이다. 도수가 낮아 편하게 즐길 수 있어 ‘혼술족’의 마음을 흔든다는 평이 쏟아졌다.

나름대로 정한 원칙을 지킨 지 2년, 한강주조 막걸리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가장 ‘힙한’ 막걸리가 됐다. 지난 7월 농림축산식품부의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올해 최고의 우리 술로 뽑혔다. 30대 청년들이 운영하는 신생 양조장이 이례적으로 ‘막걸리 대상’을 받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막걸리로 1등 하면 그게 곧 전 세계 1등 아닌가요?”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지만 그는 “막걸리가 당장 크게 유행하길 바라지는 않는다”고 했다. ‘반짝’했다 사라지는 술이 아닌, 꾸준히 사랑받는 술이 되길 바라서다. 다음 목표는 ‘양조장 문화’를 젊은 층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꼭 와이너리만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양조장 투어를 가서 술 만드는 과정도 보고, 주인장도 만나면서 전통술 매력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전통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로컬 양조장’이 한국의 새로운 매력이 될 수도 있다”며 환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