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경기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근데 이번 올림픽을 치르면서 즐길 수 있게 됐어요.”
김보름(29·강원도청)은 지난달 19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5위에 오른 후 21일 귀국했다. 25일부턴 동계체전에 나서 3000m와 1500m, 팀 추월 3관왕에 올랐다. 빡빡한 일정에 피곤할 법도 한데 28일 만난 김보름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개인 최고 기록엔 조금 못 미치지만, 동계체전에서 평창 올림픽 이후 가장 빨랐다. 요즘 스케이트에 재미가 너무 붙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응원을 많이 받으니깐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김보름은 4년 전 평창에서 눈물을 흘렸다. 팀 추월 경기에서 선배 노선영(33·은퇴)을 따돌렸다고 비난받았다. 그의 선수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60만명에 달했다. 군중 심리를 등에 업은 각계 인사들도 한마디씩 했다. 정부가 ‘왕따 주행’이 없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도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치료도 받았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표현할 말조차 생각나지 않아요. 제 말을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고 말수도 줄었다. 그는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큰 고통”이라며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했다.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으로 간신히 버텼다. 2020년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최근 1심은 “노선영은 김보름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보름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고 믿고 법원에 갔다. 1심 이후 많은 사람이 사실을 알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제가 포기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말을 듣고 힘이 났어요. ‘누군가 나를 보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김보름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과거 자신을 비난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분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조금씩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김보름은 올림픽을 세 차례 치렀다. 첫 올림픽 2014 소치는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발판”이었다. 2018 평창은 “너무나 좋으면서도 힘든 순간”이었다. 매스스타트에서 첫 올림픽 메달(은)을 땄지만, 팀 추월 경기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22 베이징은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섰고 생각지 못한 응원도 많이 받았다. 아쉬움도 있다. 경기 막판 선두권으로 올라서고도 상대 선수와 접촉하면서 스퍼트를 끝까지 올리지 못해 메달을 못 땄다.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며 “100점 만점에 75점”이라고 했다.
김보름은 동계체전을 끝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했다. 4년 후 올림픽 도전에 대해선 여지를 남겼다. 그는 “평창 이후 스케이트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는데 베이징에 갔다. 4년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우선 한 해 한 해 최선을 다해 보내고 싶어요. 그러면 다음 올림픽도 금방 다가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