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 천하무적으로 군림하던 1982년 가요계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스물다섯 살 청년 이용이 샛별처럼 등장한 것이다. 순정만화책에서 걸어나온 듯 안경 너머 우수 어린 눈빛을 한 그가 두 손으로 마이크를 감싸쥐고 울먹일듯한 표정으로 ‘잊혀진 계절’을 열창하자 여심이 폭발했다.
그 기세로 방송사 연말 가요상을 휩쓸었다. 그 노래 ‘잊혀진 계절’이 올해로 발표 40주년을 맞았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10월의 마지막 밤을~”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지금도 매년 10월 31일 라디오 프로 선곡표를 점령하고 있고 숱하게 리메이크됐다. ‘잊혀진 계절’ 발매 40주년을 맞아 16일 만난 이용은 “그 어느 때보다 뜻깊어야 할 40주년인데 이태원 참사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당초 그는 노랫말에 등장하는 10월 31일에 맞춰 인천 연수구의 공연장에서 특별 콘서트를 준비했고, 전석 매진됐지만 참사 여파로 취소됐다. “공연이 취소됐다는 아쉬움이 아니라,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렵더라고요. 저에게 이태원은 각별한 곳이거든요. ‘잊혀진 계절’로 성공한 뒤 처음 장만한 아파트가 참사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요.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죠.”
이용은 여동생의 친구가 대학가요제에 도전했다 떨어졌던 노래를 받아서 ‘바람이려오’라는 제목을 달고 1981년 ‘국풍 81 젊은이 가요제’에 출전해 2등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스타성을 눈여겨본 음반업계의 큰손 임정수 지구레코드 사장에게 발탁됐다.
열 곡을 채운 데뷔 앨범 작업이 거의 끝났을 때, 당시 조영남이 취입하려다 우여곡절로 무산돼 공중에 붕 뜬 한 곡이 끼워 팔기 상품처럼 추가됐다. 그 노래가 ‘잊혀진 계절’이다. 기도하듯 마이크를 감싸쥐고 입에서 멀찌감치 떼서 절규하듯 내지르는 라이브 장면은 이용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멋 부린 줄 알지만, 사실은 군기가 바짝 들었기에 만들어진 장면”이라며 웃었다. “신인으로 무대에 서서 덜덜 떨다 보니 마이크를 떨어뜨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두 손으로 감싸쥐었고 버릇이 됐죠. 마이크를 입에서 멀찍이 뗀 것도 출력 과다로 잡음이 나는 걸 피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당시 음향 기사분들이 가수들 군기를 워낙 많이 잡으셨거든요. "
그의 음악 인생에는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을 때 가정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미국으로 떠났다. 귀국한 뒤 꾸준히 앨범을 내고, 음악 프로에 출연하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했지만, “공백기가 아쉽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도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엔 집으로 하루에 팬레터가 200통이 넘게 왔고, 무작정 집으로 찾아온 팬들도 많았어요. 그때 그분들이 지금은 50~60대 중년이 돼 문화센터 노래 강좌에서 만납니다. 한 시절을 함께한 팬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행복하죠. 남들이 보는 만큼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을지도 몰라도요.”
새 노래도 낼 계획이다. ‘잊혀진 계절’의 후속 히트곡 ‘사랑과 행복 그리고 이별’의 원곡을 부른 이탈리아 인기 혼성듀오 알 바노(79), 로미나 파워(71)의 또 다른 노래 ‘리베르타(liberta·자유)’의 번안곡을 준비 중이다. 이용은 “번안을 계기로 알게 된 알 바노는 친형제처럼 가까운 사이”라며 “자기 노래를 가장 멋지게 리메이크한 해외 가수로 저를 꼽는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