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웅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명예교수와 김지자 서울교대 명예교수 부부의 생전 모습./최라영 교수 제공

“엄마가 매일 ‘남편과 같은 날 천국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거든요. 기도가 이뤄졌나 봐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고(故) 정지웅(85)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명예교수의 막내딸 정양희(54)씨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 정 교수와 아내 고 김지자(84) 서울교대 초등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4일 한날 6시간 차이를 두고 별세했다. 16일 본지가 찾은 빈소에 부부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유족들은 “의식이 없던 아버지가 어머니 소식을 들으셨는지, 어머니를 안치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위독해졌다는 연락을 받아 가족 모두가 놀랐다”고 했다.

정 교수는 지난달 31일 갑자기 기도가 막혀 의식을 잃고 입원했다. 패혈증으로 치료를 받고 4개월 지난 시점이었다. 아내 김 교수는 보름 동안 의식 불명 남편을 정성으로 간호했다. 그러다가 지난 14일 “기운 좀 차리고 오겠다”며 평소 남편 정 교수와 함께 다니던 한 스포츠센터에 갔다가 갑자기 심장이 멎었다. 아내 김 교수는 오후 2시 15분쯤, 의식 불명 상태로 입원 중이던 남편은 오후 8시 20분쯤 별세했다.

유족은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던 아내 김 교수가 남편 정 교수의 병환에 상심과 충격이 컸던 탓인 것 같다고 했다.

정 교수와 김 교수는 각각 1958년, 1959년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선후배였다. 1966년 결혼한 두 사람은 3남매의 부모였다. 선천적 약시(弱視)인 정 교수는 작고 몇 해 전부터 거의 앞을 볼 수 없었다. 아내 김 교수가 남편과 24시간 붙어 다니며 손발이 돼줬다. 좋지 않은 시력에 책을 읽기 어려웠던 정 교수가 논문을 쓰던 시절, 정 교수가 자신의 연구서 내용을 구술하면 아내 김 교수가 글로 정리하곤 했다.

부부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남편 정 교수는 생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주 은혜 놀라워/잃었던 생명 찾았고/광명을 얻었네.’ 찬송가가 빈소에서 울려 퍼졌다.

함께 다니던 경기 용인의 한 교회에서 두 사람은 ‘잉꼬부부’로 유명했다.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 작고하기 직전까지, 아내 김 교수는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봉사했다. 남편 정 교수가 항상 곁에 있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남편을 돌보면서도 자식들에게 힘들다는 내색 없이 “항상 잘 지낸다”고 말하는 어머니였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아내 김 교수는 평소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겨질 남편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정 교수와 김 교수는 농촌 교육을 함께 연구한 학문의 동반자였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던 정 교수는 당시 열악한 농촌 교육의 현실을 깨닫고 농촌 교육 개선에 일조하기로 다짐했다. 교육사회학에 관심을 둔 김 교수도 남편의 열정에 이끌려 같은 꿈을 품었다.

1973년엔 부부가 함께 ‘지역사회개발:그 이론과 실제’라는 책을 냈다. 두 사람은 “지금은 널리 퍼진 ‘평생 교육’ 개념을 농촌에 심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교수의 제자 김진화(61) 동의대 평생교육·청소년상담학과 교수는 “아직 평생 교육이 제도화되지 않았던 1980년대에 사회교육학 개론의 시초가 된 분”이라며 “세미나에서 항상 제자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던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정 교수를 회상했다.

정 교수는 평생 농촌 교육 연구에 헌신했다. 1966년부터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정 교수는 1985∼87년에는 서울대 새마을운동종합연구소 소장을 맡아 새마을운동 연구에 집중했다. 그는 생전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며 도농(都農) 격차가 줄고 농촌이 부흥을 이루는 걸 봤다”며 새마을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후 정 교수는 1986년 농업교육학회, 1994∼96년 한국사회교육협회, 1998년 한국지역사회개발학회, 1999년 한국농촌계획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00년에는 아시아농촌사회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2005년 서울대 교수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문해교육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정지웅 별세=김지자 남편상, 정광호·정선희·정양희 부친상, 황용하·전우열 장인상, 이현정 시부상=14일20시20분 서울성모병원, 발인 18일8시, (02)2258-5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