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컨트리 음악의 상징인 카우보이 모자를 쓴 가수 캐리 언더우드(42), 제이슨 올딘(48), 빌리 레이 사이러스(64).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행사의 축하 공연자로 나선다. 통상 미 대통령 취임 공연은 인지도 높은 글로벌 팝스타들이 맡았지만, 올해의 경우 보수적인 백인 들의 음악으로 여겨진 컨트리 음악인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제이슨 올딘 홈페이지

오는 2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47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의 본행사 및 축하 행사에 컨트리 가수들이 대거 출연한다. 오랫동안 미국 시골에 사는 보수적 백인들의 음악으로도 치부받던 컨트리는 최근 몇 년 새 미국의 주요 음악 차트를 석권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대통령 취임 축하 행사에 단골로 오르던 글로벌 팝스타들 대신 컨트리 음악계 간판 가수들이 노래로 ‘트럼프 2기’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다.

우선 20일 취임식 공식 행사에서는 헤드라이너(가장 주목받는 출연자) 역할을 컨트리 가수들이 도맡았다.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의 취임 선서가 끝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선서를 하기 직전에 캐리 언더우드(42)가 공군·해군 합창단과 함께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을 부른다. 1893년 시인 캐서린 리 베이츠가 쓴 시에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제2의 미국 국가’로 불리며 스포츠경기 등 각종 행사에서 애창돼 왔다.

언더우드는 2005년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4에서 우승한 뒤 컨트리 음악뿐 아니라 가스펠(기독교 복음성가) 가수로도 활동해 왔고 지금까지 미국 최고 권위 음악상 그래미상을 여덟 번 받았다. 세계 최고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데뷔 초반 컨트리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둘이 ‘컨트리 여왕 라이벌’ 구도도 형성했다. 특정 진영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아온 언더우드는 취임식 공연 확정 뒤 낸 성명에서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한다. 이 역사적인 행사에서 작은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언더우드의 공연 소식에 진보 성향 언더우드 팬들은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날 취임식 사전 공연 무대에는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진 원로 컨트리 가수 리 그린우드(83)가 올라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를 부른다. 그가 지난해 공화당 전당대회 등 트럼프의 중요 행사 때마다 무대에 올라 부른 노래다. 그린우드는 8년 전 트럼프 1기 취임식 때도 같은 무대를 가진 바 있다.

취임식 하루 전 워싱턴 DC의 대형 스포츠 경기장인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리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축하 모임에도 컨트리 가수들의 무대가 잇따라 펼쳐진다.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진 유명 컨트리 가수 빌리 레이 사이러스(64), 컨트리와 록을 합친 퓨전 음악을 발표해 온 키드 록(54)이 무대에 오른다. 두 사람 모두 공개적으로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해 왔다. 최근 컨트리 열풍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제이슨 올딘(48)도 취임식이 끝나고 열리는 무도회에서 노래할 예정이다. 올딘은 “대도시 사람들이 자유를 내세워 저지르는 못된 행태를 소도시에서 응징하겠다”는 내용의 컨트리 곡 ‘트라이 댓 인 어 스몰 타운(Try That in a Small Town·소도시에서 그 짓을 해봐)’으로 2023년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이 노래의 성공은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주도하는 담론인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에 염증을 느낀 보수층의 문화적 반란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트럼프 취임 행사의 ‘라인업’이 컨트리 가수들로 채워지자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15일 “트럼프 취임식에서 컨트리 음악을 많이 들을 준비를 하라”고 보도했다. 이번 출연진 구성에 대해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의 취임 때와 확연한 대비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할리우드 톱스타들과 글로벌 팝스타들의 공개 지지세가 강한 민주당은 역대 대통령 취임 행사의 공연자 면면도 화려했다.

4년 전인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과 특별 공연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레이디 가가, 제니퍼 로페즈,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 톱스타들이 축하 공연을 했다. 첫 흑인 미 대통령으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기 취임식에서도 비욘세, U2, 스티비 원더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전반적으로 유색인종 비율이 높았고 음악 장르도 록, 리듬앤블루스, 라틴 팝 등으로 다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