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연세대 ‘윤동주 시비’ 앞에서 윤동주 시인의 유족인 윤인석(왼쪽부터) 성균관대 교수와 가수 윤형주씨, 강석찬씨가 묵념하고 있다. 이날 연세대는 윤동주 시인 80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연세대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시인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1941)의 한 구절이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루스채플에서 울려 퍼졌다. 윤동주의 6촌 동생 가수 윤형주(78)씨의 낭독이었다. “동주 형님은 당신의 죽음 이후를 예견했던 걸까요? 시간이 흘러 힘없는 나라의 무명 시인이던 그의 작품이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교과서에도 실리며 양국 아이들이 읊게 됐으니 말입니다.”

시인의 80주기를 이틀 앞둔 이날, 연세대는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1917~1945) 선생 80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윤동섭 총장, 이경률 총동문회장, 윤형주 유족 대표와 재학생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윤동주는 1938년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일제가 한국을 전시 총동원 체제로 몰아간 때였다. 한반도가 일제 군국주의 아래서 신음할 때,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고뇌했다. 이때 쓴 작품이 ‘자화상’(1939) ‘투르게네프의 언덕’(1939) 등이다.

1940년 조선일보·동아일보가 폐간되고 조선어 사용 금지, 창씨개명 강요 등 민족 말살 정책이 본격화했다. 연일 독립운동가가 처형되거나 투옥되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윤동주는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품고 약 1년간 절필하기도 했다. 다시 펜을 잡은 그는 썼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팔복·1940) 신약성서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열거하는 여덟 가지 복을 ‘슬픔’ 하나로만 표현하며 고난에 침묵하는 신에게 저항하는 작품이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원인 불명 사인으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28세였고 독립 6개월 전이었다. 194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윤동주는 1943년 7월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송몽규와 더불어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 문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이었다.

같은 형무소에 갇혔던 송몽규도 한 달 뒤 순국했다. 송몽규는 생전 “동주와 나는 계속 주사를 맞고 있어요. 그 주사가 어떠한 주사인지는 모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이 일제의 생체 실험으로 희생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의 순국 3년 뒤인 1948년 1월 출간됐다. 윤동주가 대학 졸업반 시절 엮었던 시에 친구 강처중이 보관하고 있던 유고 등 시 31편이 담겼다. 1968년 11월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시’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모교 연세대 교정에 세워졌다.

이날 윤동섭 총장은 추모사에서 “두 분의 삶은 진리와 자유를 통해 인류 공동의 번영에 헌신하는 연세 정신의 근간”이라며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믿음이 점차 희미해지는 시대에 두 분의 정직하고 청렴한 의지는 연세대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연세대는 두 사람의 인문 정신을 새롭게 계승할 것”이라고 했다.

이경률 총동문회장은 “윤동주 시인이 시로 시대를 재건했다면 송몽규 선생은 행동하는 지성의 표상이었다”며 “한 명은 펜을 들었고, 한 명은 행동을 했지만 그들이 꿈꾼 세상은 하나였다. 조국의 자유, 인간의 존엄, 그리고 더 나은 미래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정신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했다.

추모식에는 윤동주 시인의 후배 학생들도 참석했다. 문예창작 동아리 ‘연세문학회’ 회장인 재학생 조현진(22)씨는 “시인 등단을 꿈꾸는 학생으로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들의 80주기 추모식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라며 “문학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애국심에서 나오는 울림을 주는 시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 관련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재학생 김예원(22)씨는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으로만 알던 시인의 삶을 탐구하며 나 역시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연세대는 이번 상반기 윤동주와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연극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기념관 야간 개관, 윤동주 포럼, 광복 80주년 특별전 ‘연희전문과 독립운동’ 등이 예정돼 있다.

일본에서도 서거 80주기 추모 행사가 열린다. 그가 몸담았던 대학인 도시샤대와 릿쿄대는 각각 16일 윤동주에 대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수여식을, 23일 시 낭독식을 연다. 릿쿄대 졸업생들은 사비를 모아 2009년 한일 양국어 시 낭독 CD를 낸 데 이어 제2집 CD를 발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