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를 찾은 스캔런 민주당 하원의원, 켈리 민주당 상원의원(왼쪽부터)이 조선소 현지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국희 특파원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 작년 12월 국내 조선업계 사상 처음으로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현지 조선소다. 영하 8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 한화 로고가 박힌 안전모를 쓴 마크 켈리(61·애리조나) 미 의회 민주당 상원의원과 메리 게이 스캔런(66·펜실베이니아) 민주당 하원의원이 조선소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었다. 조선소 부지를 지역구로 둔 스캔런 의원은 “2018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조선소는 무척 조용했다”며 “한때 역사적으로 미 해군이 시작된 곳이고 미국에서 가장 큰 조선소였던 이곳이 한국 기업 덕분에 다시 활력을 얻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켈리 의원은 조선소 현장에서 용접공, 조립공 등을 일일이 만나 근무 현황을 청취했다. “그 전에는 어디에서 일했나”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나” “한화가 인수한 뒤 뭐가 달라졌나” “근무 만족도는 어떤가”라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보육업에 종사했었다는 여성 케이시는 “용접공으로 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그 전보다 조선소의 급여가 훨씬 많다”며 웃었다.

켈리 의원은 미 해군 항공모함 전투기 조종사,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 걸프전 참전 등의 특별한 경력을 가진 인물로 미국의 군사·항공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작년 12월 양당 상·하원의원 4명이 발의한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미국의 번영·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 공동 발의자 중 한 명이다. 선박법은 현재 미국으로 수입되는 재화의 2%만 담당하는 80척 규모의 미국 상선을 10년 내 250척으로 늘리기 위해 미국 내 조선소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미국의 해상 운송 역량을 강화하고 유사시 이들 상선을 군수 물자 운송에 투입되는 전략 상선단으로 활용해 중국에 밀린 해상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이날 켈리 의원은, 선박법을 119대 의회에 재발의하기 전, 현장 실사 차원에서 한화필리조선소를 둘러본 것이다. 미 정계는 자국 조선업 쇠퇴에 대한 초당적 위기 의식과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작년 11월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먼저 요청하기도 했다.

선박법이 통과되면 2000년 이후 미국 대형 상선의 50%를 공급해 온 필리조선소가 최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선소 직원 어니스트씨는 “한화필리조선소의 2025년은 아마도 가장 바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직원 휘태커씨는 “현재 골리앗 크레인에 한화 로고를 새로 입히는 페인트칠 작업이 몇 개월 내로 종료되면 한화필리조선소는 필라델피아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대형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조선소는 캘리포니아주 제너럴 다이내믹스 조선소와 한화필리조선소뿐이다. 켈리 의원은 이날 “10년 내 250척을 더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곳에 더 많은 고용이 이뤄져야 할 수도 있다”며 기술자들을 격려했다.

켈리 의원은 동행 취재를 나온 필라델피아 지역 언론들과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 안보와 경제에 필수적인 조선업 역량 부족 문제는 수십 년간 지속돼왔다”며 “이 조선소는 훌륭한 자산이며 한화가 인수한 뒤 필라델피아 지역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켈리 의원은 해상 운송을 중국 상선이 장악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도 거듭 표했다. 그는 “현재 미국 국적을 갖고 운항하는 대양 항해용 상선은 약 80척인데 중국은 5500척으로, 중국은 원할 경우 언제든지 미국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다”며 “그냥 미국으로 배를 안 보내면 그만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어느 곳이든 대규모 분쟁이 일어날 경우,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어 미국의 전투력을 수송하기 위한 강력한 상선단이 필요하다”며 “따라서 한국과 이 조선소를 재건하고 현재 우리가 직면한 국가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켈리 의원은 ‘한미 조선 협력이 한국 철강 등에 대한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협상 카드로 사용될 수 있겠느냐’는 본지 질문에 “한미 조선 협력은 필라델피아와 우리 국가 안보를 위해 확실히 긍정적인 일로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면서 “배를 건조할 때 들어가는 재료가 내 생각에 99%는 철강일 텐데 트럼프가 철강에 25% 관세를 매기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트럼프가 한국에 조선 협력을 요청하는 동시에 한국 철강에 관세를 매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데이비드 김 한화필리조선소 대표는 “우리 조선소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우리가 어떤 투자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의원들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며 “우리 모두는 조선 산업이 위대한 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