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6시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 ‘전용기 공항’인 이곳 입구에서 취재진 수십 명이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이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막후 실세’로 꼽히는 트럼프 주니어(48)다. 이날 트럼프 주니어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트럼프 주니어는 채 30시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한국에 머물며 국내 재계 인사들과 릴레이 면담을 갖는다.
이날 공항에 도착한 트럼프 주니어는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는 곳과 다른 통로로 나와 만찬이 예정된 정 회장 자택으로 향했다. 트럼프 주니어가 머물 것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주변에는 환영 집회가 열리는 등 인파가 몰려 경찰 기동대가 배치됐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트럼프 주니어가 한국을 찾은 건 처음이다. 하지만 작년에만 한국을 3번이나 찾을 정도로 한국에 친숙하다. 이번 방한은 작년 8월 이후 8개월 만이다.
트럼프 주니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공식 정부 직함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만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 주니어를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뜻의 트럼프 구호)의 핵심 집행자”(뉴욕타임스), “새로운 킹메이커”(악시오스) 등으로 평가했다. 실제 트럼프 주니어는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J D 밴스 상원 의원을 부통령으로 추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붙인 관세 무역 전쟁 속에서 각국 정부는 물론 기업인들도 트럼프 행정부와 연결 고리를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주니어의 ‘몸값’은 더욱 올랐다는 평가다. 트럼프 주니어는 방한에 앞서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를 찾아 기업인과 정치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국내 재계도 트럼프 행정부와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 고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 주니어는 평소 교분이 두터운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의 초청을 받아 방한을 결정했다. 정 회장은 최근 미국에서 트럼프 주니어를 직접 만나 ‘한국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주니어는 정 회장의 요청에 1박 2일 방한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2015년 국내 한 언론사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뒤 5년여 전부터 급속히 가까워졌다고 한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됐다. 정 회장은 평소 트럼프 주니어와 모바일 메신저로 소통을 하고 서로 편하게 YJ(정 회장), 형제를 뜻하는 브로(bro, brother의 준말)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해 8월 방한 당시 트럼프 주니어는 “한국에 왔을 때 YJ가 환대해 준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을 받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트럼프 주니어의 방한 소식이 알려지자, 재계는 물론 정·관계에서도 그와 만남을 갖기 위해 힘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 주니어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고 한다. 외국 정·관계 인사를 만나려면 미국 백악관과 협의를 해야 하는데, 트럼프 주니어는 외부 활동을 최대한 삼간 채 철저하게 국내 재계 인사들만 비공개로 만나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주니어는 서울 모처에서 30일 하루 동안 국내 재계 인사들과 릴레이 면담을 갖고 다시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르르 한자리에 모여서 사진을 찍는 대신 개별적으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면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주니어가 국내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방식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재계에선 10대 그룹 총수의 상당수가 트럼프 주니어와 면담을 할 것으로 본다. 일부 재계 인사는 트럼프 주니어와 만남을 갖기 위해 해외 출장 일정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그룹 이외에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도 트럼프 주니어와 면담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