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소록도에서 발생한 한센인 84명 학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최근 ‘소록의 후예’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권정수(74)씨는 일부에게만 알려져 있는 소록도의 비극적 사실이 밝혀지기를 70년 가까이 염원해온 인물이다. 호적 나이로는 71살이다.
소록도는 흔히 나병이라고 불리워진 한센병 환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외부와 차단돼온 곳이다.
이 사실을 알고 역사적 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까닭은 그가 바로 소록도에서 태어나고 어릴 적까지 자라온 미감아(未感兒) 이기 때문이다. 미감아란 한센인 부부에게서 태어난 자식으로 한센병을 물려받지 않은 건강한 이를 말한다. 그의 부모는 한센인이다. 그는 말하자면 바로 ‘소록의 후예’다.
그가 역사적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고 한 ‘소록도 한센인 간부 84명 학살사건’이란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19일에서 22일 사이 벌어진 한센인 학살 사건이다.
“광복 직후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배급될 자재 창고에 보관 중인 의약품을 비롯 식량과 배급품 등을 건강직원들이 섬 밖 육지로 빼돌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한센인들이 배급품 확인 과정에서 건강직원들에게 무참하게 학살된 겁니다.”
총과 흉기로 무장한 건강직원들이 자신들의 죄상이 드러날까봐 한센인 84명을 무차별로 학살한 이 비극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진실규명조차 되지 않은채 이어져 오고 있다.
권씨는 “학살에 가담한 건강직원들은 학살한 한센인들을 구덩이에 파묻은 것은 물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한센인들까지 구덩이에 밀어넣어 송탄유를 뿌린 뒤 생화장하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몇명에게서 그는 참상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의 부모와 주위 어르신들은 “정수야, 네가 장성하고 많이 배운 뒤 우리 소록도 한센인 통한의 비사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만방에 널리 알려라”는 말을 해왔으며, 그는 그 말을 뼛속 깊이 들으면서 자랐다고 했다.
학살의 주역이었던 오모씨와 송모씨는 나중에 여순반란 당시 다른 양민학살 사건에 연루돼 진압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이 같은 통한의 역사는 거의 가려지다가 1956년 형식적 조사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2002년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가 소록도에 건립됐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권씨의 진실규명을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
소록도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2학년을 다니던 중 그는 소록도를 나와 대구로 왔다. 그러나 소록도에서 수학한 것을 인정해 주지 않아 한때 방황하기도 했다.
젊고 혈기방장한 때에 주먹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대구에서 나름 기반을 잡은 사업가로 활동했다. 한때 50여명의 직원들 둔 ‘잘 나가는 사업가’였지만 20년전 파산하고 말았다. 지금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소록도의 비극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등 ‘풍운아’적인 삶을 살았다.
“소록도 참상을 알리는 수단으로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의뢰하러 관련 업체를 찾아 다녔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말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대안으로 이번에 ‘소록의 후예’를 펴내 소록도 통한의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자신이 ‘미감아’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커밍 아웃’을 했다. 아내는 물론 자식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그만의 비밀이었다.
이 책에는 한국 나병사에서부터 소록도의 설립 역사, 한센인 학살극 등 한센병과 소록도의 역사, 그리고 그가 그토록 진실규명을 기원하는 한센인 학살사건이 소상히 실려 있다.
2부는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 ‘축복과 통탄, 풍광과 사랑의 섬 한센인 성지 소록도’를 실었다. 이 소설에는 ‘다윗’과 ‘엘리사벳’이라는 두 주인공이 펼치는 대륙적 스케일의 사랑과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한편 권정수씨는 최근 청와대에 ‘소록도 한센인 간부 84명 도륙 참사 생화장 매장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을 올려 소록도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권씨는 “정부가 수립된지 7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는 소록도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